제주도에 와서 남한 최고봉 한라산을 오르지 않고, 어찌 제주도를 왔다고 하겠는가.

그래서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전에 회상신 하나...

울릉도를 여행하는 중이었다. 저기 시외(?)에 폭포가 좋다고 해서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폭포를 향해 올라갔다. 역시 폭포답게(?) 폭포는 산의 중턱에 좀 멀리 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터벅 터벅 올라가서 폭포 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고 있으려니, 나 처럼 혼자 여행을 온 사람이 헉헉 거리며 올라온다.

'와, 산 잘 타시네요'

'네?'

'아니 내가 저 밑에서 보고, 저 거리면 곧 따라 잡을 수 있겠다 싶어서, 따라 왔는데, 도무지 따라 올수가 없더라구요. 저도 한라산을 3시간만에 왕복해서 산 잘 탄다는 소리를 듣는데, 걸음이 빠르시네요....'

회상 끝!

3시간만에 올라 갈 수 있는 산이라.... 난 이때부터 한라산을 우습게 봤다. 지리산에 갔을 때, 진정한 산 다람쥐들을 경험한 나로서는 내가 산을 잘 탄다고 느끼지 않지만, 나와 비슷한 실력의 사람에게 그 소리를 들었다면, 분명 나도 그 정도 시간에 주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일찍 일어나 숙소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한라산 가는 길을 물어보니,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면서 올라가는데 3시간 내려오는데 2시간이면 떡을 친다고 하시니, 더더욱 한라산을 무시할 수 밖에.....

그래서 좀 일찍 일어난 것을 후회하며 숙소에서 좀더 비비적 거리다가, 10시쯤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로 가는 버스안.... 주인 아주머니까 알려준 코스는 휴식년제로 인하여 길이 막혔단다 - -;

그길로 가면 중간까지는 올라갈 수 있지만..... 정상은 볼 수 없다고했다. 택시기사와 딜을 해서 관음사까지 10000원에 가기로 하고, 편안하게 관음사 도착. but!!!!!! 9시 30분이 넘으면 들어갈 수 없단다. 평균 왕복 8시간이 걸리는데다가, 중간에 산장이나 기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그 시간이 넘으면 입산을 금지한다는 한라산 관리소 직원의 말에 결국 난 이날 한라산을 오르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날씨가....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한라산을 오르는건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돌아가기도 그렇고, 또 새로운 일정을 잡기도 멋 해서, 시원하게 뚤린 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이 길을 따라 걸었다.

간간히 지나가는 차만이 있을 뿐, 시원하게 뚤려있는 2차선 도로의 가편을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로 걸어서 하는 여행은 들어가는 에너지야 어떤 방법보다 힘들지만, 그 디테일 면에서는 최강이 아닐까?

차로 지나면 쉽사리 멈출 수 없는 이 길에서, 자전거로 간다면 놓치기 쉬운 작은 풀꽃 조차 놓치지 않고 난 그렇게 걷기 시작했다.

가끔씩 자나가는 차속의 운전자가 신기한 듯이 날 힐끗힐끗 처다 보면서 지나가고, 또 어떤이는 날 태워 주기 위해서 내 곁에서 천천히 차의 속력을 줄이며 나의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지만, 난 둘 모두를 거부하며 마냥 걸었다.


언덕을 넘고 굽은 길을 지나.... 하늘과 나무와 바람을 느끼며 뚜벅 뚜벅 걸었다.
가끔씩 만나는 작은 목장의 넓은 초원에는 말 몇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저 그림 어딘가에 잘 찾아보면 말이 숨어있다--;),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게 핑어 있었다.
그렇게 난 길을 걸었다.
숲에서는 어린날 내 기억속에 강렬하게 자취를 남겼던, 갖가지의 향이 풍겼지만, 쉽사리 만나는 들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처럼, 내 기억속에 남아 있지만 난 그 향의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날은 흐리고 맑기를 반복 하고 있었다.
난 안경을 선그라스로 바꿔 쓰고, 모자를 쓰고, 흐르는 땀을 훔치며 쉬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가다가 만난 작은 다리....

처음에는 그냥 작은 하천 위에 놓여 있는 다리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다리는 깊은 계곡 위에 놓여진 다리였다. 아름들이 나무들이 불쑥 불쑥 쏟아 있어 언뜻 보면, 계곡 보다는 작은 하천을 생각하게 되지만, 조금만 고개를 숙이면, 뻥뚫려있는 깊은 계곡을 만날 수 있게된다.

이 다리는 깊은 계곡 위에 놓여 있었다..

계곡은 비록 건천이라, 물이 풍부하게 넘치는 장엄한 광경은 볼 수 없었지만,


다만 아쉬웠던건, 풍부한 수량의 장엄한 계곡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구멍이 숭숭뚤린 돌들로 구성된 제주도는 우기가 아니고서는 하천에 물이 넘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물론 사시사철 시원한 물이 흐르는 돈내코같은 계곡도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가보지 않았다.

그 작은 다리를 뒤로 하고 난 다시 걷는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라는 영화에서집을 지을 생각을 가진 한 사람이 저우성을 경관이 풍부한 산으로 불러 이렇게 물어본다.

'자네가 이곳에 집을 짓는 다면 어떤 집을 짓겠는가?'

'아무것도 짓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게 가장 좋지, 하지만 집을 짓는 다면 어떤 집으 짓겠는가?'

그래... 아무것도 짓지 않는게 가장 좋겠지만.... 꼭 집을 짓고 싶은 푸른 언덕이 내가 길을 걷는내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머리에 구름 모자를 쓴 한라산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좌에 한라산을 끼고, 우에 푸른 들판을 끼고 난 길을 걸었다.

길을 가다 좀 쉴 자리를 찾아 엉덩이를 붙이고, 모자를 벗어 다시 땀을 훔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청량한 풍경과 사뭇 다른 외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땀을 식히고 난 다시 길을 걸었다.

저 멀리 제주시가한눈에 보였다.

순간 암담해진..... 언제 저기까지 걸어가지? - -a

그래도 난 걸었다.

걷다 보니, 신비의 도로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깡통을 굴리면 오르막 길을 구른다는 그도로....

조금은 돌아가야함에 살짝 갈등했지만, 난발 걸음의 방향을 바꾸어 신비의 도로를 향해서 걸었다.


생각보다 도로는 완만해 보였고, 뭐 비록 저런 도로일지라도 올라간다는게 신기하긴 했지만... 가까이 보면.... 그냥 평지와 다름 없었다 - -; 그런데 재미있는건 차들이 바글 바글했는데, 각종 관광버스가 저 구간에 서서 시동을 끄고 중력을 따라 천천히 굴러갔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그런 모습이 더 재미있었다.^^

신비의 도로 근처에 있는 밥집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생수 한병을 산 후에 다시 걸었다.

멀리... 이 평온한 도로의 끝이 보였다.

순간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저 평범한 도로를 또 터벅터벅 걸어야 하다니.....

난 걷는 걸 포기하고 결국 히치하이크를 했다.

각종 허넘버를 단 차들이 지나쳤지만... 아무도 내 앞에서 차를 세워주지 않았다.

다시 거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을 때, 트럭하나가 내앞에서 멈춰 주었다.

그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난 버스 정류장까지 와서 무사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친절한 제주의 여러 시민들게 100만의 감사를.......

ps. 오늘 내가 걸어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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