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에 이문열의 얼굴이 나왔다. 정말 간만에 보는 얼굴... 옛날에는 꽤 자주 봤었는데... 난 이문열의 글을 좋아했다.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몇번이나 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글을 읽는걸 멈췄다. 웃긴건 언제 멈췄는지 기억하고 있다는 거다. 아니, 어떤 책에서 멈췄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솔직히 이문열의 글은 아슬아슬 했다.
콕찝어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뽀족뽀족하고 까실까실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변경'과 만났다.
변경... 내가 이 책을 1권까지 읽었는지, 2권까지 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도중에 읽다가 때려 치웠고, 이후로는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거다.
변경은 해방 직후의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몰락했지만 양반이라는 신분적 자존심으로 버티는 어머니와 그 자식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 엄마의 딸은 한 은행원과 연애를 하는데 그의 집안은 양반 가문이 아니었다. 결혼을 생각한 딸은 이 남자를 어머니에게 소개 시키는게 두려웠다. 양반이라는 자존심 하나로 힘든 삶을 버티는 어머니에게 신분이 낮은 이 남자는 결코 눈에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를 소개 받은 어머니는 의외로 쉽게 남자를 받아 들인다. 그 때 어머니가 했던 말이 압권이다.
"그 시대가 원하는 것을 가진 사람이 양반이지"
여기서 핀트가 나가기 시작했다. 그간 이문열이 보여줬던 그 알듯말듯한 위화감의 정체가 살짝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결정적인건 은행과 관련한 에피소드에서 나타났다.
어떤 이유로 어머니는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 하지만 가난한 어머니에게 대출을 해주는 곳은 없었다. 힘없이 은행을 나서던 어머니는 혼자서 옛날을 추억한다.
'그래도 일제치하에서는 은행 문턱이 낮았는데, 그게 비록 땅을 수탈하기 위함이었어도 가난한 사람도 쉽기 은행이서 돈을 빌릴 수 있었는데'라면서...(정확하지는 않고, 대충 이런 뉘앙스였다.)
아마 이 부분에서 책을 덮어 버렸던것 같다.(순서는 반대 일 수 도 있다.)
그간 내가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가 들어 난것 같았다. 엄석대가 쫓겨난게 민주화의 상징이 아니라 또 다른 권력에 의한 쿠데타의 묘사였고, 사람의 아들에서 보여준 빵과 기적과 권력을 가진 메시아에 대한 지향이 결국 누구를 향했던 건지 깨달아 버렸다.
이후 난 이문열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알게 된 그의 주요 발언들은 나와 결이 맞지 않았다. 그의 그런 발언들을 접하면서 그동안 그의 작품에 열광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오늘, TV를 통해 그의 사진을 접하면서 그 때 느꼈던 그 거칠고 따가웠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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