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지리산 자락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른 남도의 가을은 조금씩 그 빛을 물들이며 하나의 고개를 넘듯 계절을 넘기고 있었다.
가을을 대표하는 풍경은 역시 고개숙인 벼의 모습이 아닐까?
물을 뺀 논은 추수를 준비하고 고개숙인 벼 이삭에서 가을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산의 능선틀 따라 내려온 가을은 좁은 논두렁을 따라 느릿느릿 들판을 물들이고
성격급한 코스모스는 그 연약한 줄기에 버거운 꽃을 피워 느린 가을을 재촉한다.
사람은 가을이 체 닿기도 전에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긴 세월을 견뎌온 산사는 찰나의 순간에 연연하지 않는 도도함으로 계절을 맞이하고
그 작은 창에 시간을 담고 있었다.
모든 만물이 온몸으로 가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산사의 계곡만은 계절의 변화를 거부하듯 시린 물살에 그 의지를 실어 보내고,
강은 그런 계곡의 치기어린 반항까지 끌어안고 계절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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