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이라는 말은 '묶음', '결합'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파생된 것으로 단어 자체에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중심개념이 포함되어있지 않은 모호한 성격을 띄고 있다. 여기에 용법의 다양성에서 기인하는 포괄성과 사회에 끼친 극도의 부정적 측면 때문에, 파시즘은 대상을 불문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적이며 폭압적인 모든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시기적으로 다양하고 지역적으로 포괄적인 것으로 이해하자는 '일반적 파시즘' 이론과 그 안에서 1,2차대전 사이 이탈리아의 경우에만 한정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 외에 연구자들의 시각이나 연구방법, 대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첫째로 파시즘을 특정 사회 경제적 발전 단계의 산물로 이해하여 그 주도세력을 계급적 시각에서 파악하는 견해, 둘째로 파시즘의 핵심을 전체주의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전자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대표적 해석이라면, 후자는 파시즘을 오히려 마르크르주의의 한 유형이나 변종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셋째로 심리적 정신적 위기의 산물로 파시즘을 이해하는 견해는 19세기말과 1차대전의 영향으로 발생한 고립, 좌절, 아노미, 무능감등이 권위주의를 통해 그 탈출구를 찾으려 했다는 심리적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해석들은 각자 허점을 안고있다. 첫 번째 견해는 파시즘이 노동자계급 및 다른 계급에게도 일정한 호소력을 지녔었다는 것을 간과했고, 두 번째는 전체주의라는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을 공산주의와 파시즘에 동시에 적용해 두 운동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무시했는가 하면, 세 번째는 파시즘을 심리적인 도착이나 질환의 일종으로 규정해 그 이데올로기의 지적맥락이나 사상적 연원의 문제를 간과함으로써 그것을 1차대전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일회적 현상으로 축소시킬 여지를 낳았다.
파시즘은 정치운동이자 체제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므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파시즘의 보편적 성격과 호소력, 그리고 서유럽 사상사에서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다. 체제로써의 파시즘에 의존해 그것을 특정계급의 운동으로 환원시키는 태도는 이데올로기로서의 파시즘이 갖는 특이성, 혁명적 성격, 그리고 그 영향력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이데올로기가 경제 사회적 하부구조에 대해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며 실천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변질을 겪기 마련인 원인 외에도, 그 자체가 이질적이며 대립되는 다양한 요소를 통합하려는 데다가 체계성과 독자성이 결여된 경우 그것이 현실에 적용될 때는 쉽사리 기존의 지배적 세력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로서의 파시즘을 알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파시즘은 상호 대립개념의 포섭, 체계성 부족, 지역의 사회 경제적 환경의 차이에 따른 다양한 편차라는 요인 외에도 대표적 이론서나 사상가의 부재로 인해 해석들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그 나름의 독자적인 사상적 문화적 기반을 갖고있음이 인정된다. 즉 반자유주의·반합리주의·엘리트이론·사회다원주의·혁명적 생디칼리즘·대중심리학·극단적 민족주의등 19세기말의 다양한 지적경향을 기반으로 그것들을 결합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마르크스주의를 동시에 반박하려 한 것이다. 원래 파시즘은 의회의 무능함 등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모순과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의 승리로 인한 혁명의 불안 등, 이 두 체제의 위협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파시즘의 두드러진 성격 중 하나는 철저한 반(反)이성주의이다. 파시즘은 18세기의 유산과 이것이 지배한 19세기, 혹은 낡은 '자유주의의 세기'의 타도를 일차적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사회·경제·정치적 측면 모두를 거부하고 나아가 그 철학적 기반을 비판했으며 그를 대신할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문명수립을 목표로 했다. 따라서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여러 측면과 그와 밀접한 개인주의, 민주주의, 합리주의, 물질주의 모두를 타락과 분열, 대립과 쇠퇴의 원천으로 간주하고 이를 극복하려 했다. 우선, 파시즘은 일차적 산업화의 산물이며 산업화 과정에서 파편화된 개인에게 강한 소속감을 부여하려는 시도로서 자연적인 인간집단을 파괴하려는 모든 경향에 반대한다. 이 관점 하에서 인간은 오로지 태어나면서 속하게 되는 가족·인종·조국·민족의 구성으로 존재하며 개인의 자유 역시 집단과의 관계 속에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그들에게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시하여 역사적이며 전통적인 그 집단들을 파괴하는 아나키즘이다. 합리주의 역시 인간존재의 필수적 전제인 집단과 조직을 파괴한다는 면에서 파시즘의 비판을 받았는데,이들에 의하면, 합리주의는 19세기 이후 개인주의와 결합해 개인의 이성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가족을 파괴하고 조국의 가치를 폄하하며 민족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개인의 이성이 아닌 집단이야말로 자연적이며 전통적이고 또 초개인적이며 초이성적인 진정한 실체이지만, 그 이러한 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합리주의는 그들에게는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힘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며 그로 연결된 인종과 민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인데 합리주의적 인간관은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이러한 본능적 집단을 파괴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히려 대중은 민족의 신화 속에서 단결하고 직접적인 정치참여의 감각을 얻을 것이다. 파시즘은 이 같은 입장을 받아들여 다양한 의식과 상징, 속죄양에 대한 폭력, 슬로건 등을 이용하여 대중을 동원하고 선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파시즘은 대중시대의 산물이자 동시에 대표적인 대중적 이데올로기이다. 파시즘에서 나타나는 행동주의, 반물질주의도 반합리주의와 밀접히 관련되어있다. 파시즘에서 합리주의는 모든 것을 물질적 이익과 관련해 계산하는 부르주아나 상인의 가치관이다. 이것은 인간을 평범하고 안이한 삶속에 가두며 도덕적 정신적 타락을 초래하지만 파시즘은 전투와 활력과 행동을 찬미하며 투쟁을 중시하여 자본주의의 물신주의를 대신해 의무감과 희생정신, 규율과 용감성, 그리고 집단의식으로 무장한 영웅주의적 도덕관을 가져올 것이었다.
파시스트들은 18세기적 진보관에는 회의적으로, 물질적 행복관을 거부하여 '복지'란 인간을 단지 먹고사는 동물로 만들 뿐으로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보았다. 한편, 파시즘의 행동주의는 목적달성 수단이 되기도 했지만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은 삶을 "지속적인 과정이며 끊임없는 생성 그 자체"이자 투쟁으로 파악하며 이론적 추론에 근거한 닫힌 세계관에 저항하고 교조주의에 반대한다. 이러한 행동주의는 대중사회에서 사라져버린 개인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는 표현 방식으로 파악되었다는 점에서 표현주의와 상통한다. 또한 파시스트는 민주주의, 특히 의회적 민주주의 체제는 자유주의적 양상이 정치적으로 구현된 것이라 보아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이들에게 그것은 부르주아의 금권지배체제이며 인간사회를 파편화하는 개인의 총합으로 여기는 아나키즘이다. 그것은 정권과 결탁한 소수 권력자들의 이익만 대변할 뿐 대중의 욕구를 대변하지 못할 뿐더러 분열시키는 피상적인 정치체제이자 물질주의가 빚어낸 타락과 부패이다. 또한 이것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명목 하에 외국인의 침투를 보장하여 궁극적으로 민족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보았다.
한편, 파시즘이 자연적 유대로 얽힌 집단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한다고 할 때, 민족주의는 당연하고도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파시즘이 추구하는 민족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와는 다르다. 후자가 프랑스혁명의 전통과 자연권사상에 기반해 민주주의적 휴머니즘의 가치체계를 간직하고 자민족의 독립을 추구하면서 타민족의 독립과 자유도 인정하는 반면, 전자는 모든 자유주의적 색채를 거부하여 개인의 자유 및 이해관계보다는 민족의 통합을 우선시한다는 면에서 반자유주의적 성격을, 민주주의와 의회주의가 민족의 분열을 초래시킨다고 보는 면에서 반민주주의적·반의회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파시스트들에게 민족은 혈연적 유대로 엮어진 실체, 확대된 가족이다. 민족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각 구성원들이 각자의 기능과 능력에 따라 위계서열을 이루는 불평등을 기반하므로 평등은 무질서를 낳을 뿐이다. 또한 파시즘은 자민족의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해 타민족의 희생을 요구한다.
이러한 국제적 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족적 단결과 대내적 평화가 필요하다. 파시즘에서 나타나는 반유태주의와 반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은 바로 이러한 민족적 단결의 강조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파시즘에서 반유태주의는 인종주의적 측면과 아울러 사회적 측면을 동시에 지닌다. 사회다윈주의의 영향하에서 그들은 유태인이 본질적으로 저열한 민족이고 물질주의의 화신이라 간주하며, 민족 속에 민족을 구성함으로써 다른 민족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보았다. 또한 국제주의적 부르주아이자 착취의 상징으로, 당시 심각한 사회문제이던 실업의 주범으로 낙인찍음으로써 노동자와 쁘띠 부르주아들을 민족주의의 명목 속에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반유태주의 및 인종주의가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필수조건인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파시스트 운동인 '패소'나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초기에는 그러한 면을 보이지 않은데, 이는 후에 독일 나치의 영향을 받아 쇠퇴해가는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넣기 위해 도입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민족적 통합을 위해 파시즘이 해결하려 했던 또다른 측면은 노동문제이다. 파시스트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에 노동자들의 상태를 비판하며 자본가와 자유주의적 경제체제를 비난했다. 이들이 보기에 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의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들의 착취에 저항할 아무런 수단도 없이 비참한 생활을 강요받는다. 국가는 부르주아지들의 지배기구이며 특히 국제적 금융가와 결탁한 정치가들의 소유물로 그들의 이익만을 대변할 뿐,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조국과의 유대를 잃어가며 격렬한 계급투쟁을 전개하면서는 반애국주의적 국제주의적 경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조국은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는 노동자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다. 파시스트에게 노동자들을 민족 공동체 속으로 재통합하는 일은, 민족전체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근본 전제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기네 운동이 민족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19세기말과 20세기초 유럽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도 노동자들을 민족적으로 재통합시키는 것을 민족주의의 제 1과제로 삼았었다. 파시즘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로 파시스트 이데올로기 형성에 사회주의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떠한 내용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이것은 파시즘을 19세기의 거대한 두 운동,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비판적 계승자로 꾸밈으로써 노동자에게는 사회주의로, 자본가 등 보수파에게는 민족주의로 호소하려는 전략의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파시즘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는데, 그 국제적 성격과 프롤레타리아라는 특정 계급의 지배라는 목표로 인해 결과적으로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르크스주의가 사유재산제를 폐지한 것에 격렬한 반발을 했는데, 이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비판적이었지만 자본가 계급이나 자본주의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성과를 인정하고 경제 분야에서의 자본가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파시즘이 꿈꾼 것은 이처럼 자본가와 노동자, 나아가 민족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운동이었으며 민족 전체가 주체가 되는 반자유주의 혁명이었다. 따라서 반마르크스주의가 파시즘의 핵심내용중 하나임은 분명하나 본질적 부분은 아니다. 원래 파시즘은 볼셰비키 혁명은 물론, 1789년 혁명과 함께 출현한 자유주의의 사회·경제·정치적 여러 측면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볼세비즘의 위협에 직면한 자본가의 반동이 아니며, 자본주의체제와 공산주의 체제 모두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모색을 목표로 했다.
그 대안으로 흔히 전체주의적 국가와 코폴라티즘(corporatism: 협동 조합 국가)을 제시하였다. 자본주의를 폐지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하에서 생긴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계급별 조합이 아닌 직업별 조합의 구성을 통해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협력을 꾀하였다. 파시즘은 이러한 조직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시키고 나아가 민족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목표한 국가는 특정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가 아닌, 모든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민족국가'였다. 이 점에서 파시즘은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의 분리, 그리고 전자에 대한 후자의 전적인 지배를 목표로 한 것이다. 또한 그들의 국가는 특정계급의 대표자가 아니라, 민족 전체의 의지 구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민족적 지도자에 의해 통치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게 구현된 국가의 역할은 모든 구성원들의 의지를 구현한 국가로서 정치·경제적 영역은 물론 지적·도덕적 및 정신적 영역 전체를 총괄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전체주의적이며, 모든 가치의 종합이자 통합인 파시스트 국가는 전 인민의 삶 전반을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힘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파시즘은 특정국가의 정치운동이나 1차대전 여파의 즉각적 산물도 아니며,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단순한 대응도 아니다. 또한 그것은 19세기 말 이래로 전개된 여러 지적운동을 독자적 방식으로 종합하려 한 시도로서 명백히 유럽의 지적 전통에 뿌리를 둔 것으로 단순히 심리적 병리현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 공산주의의 대두에 위협을 느낀 부르주아지들의 대응으로도 간주될 수 없으며, 민족문제와 사회문제의 동시해결을 통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극복하려고 한 '제 3의 세력'의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실제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이나 집권 뒤의 현실에서 파시즘의 모든 주장은 하나의 허구이자 신화였음이 드러났다. 그것은 하나의 유토피아로써 현실에서의 한계를 보여주지만 한편 그 환상적 성격으로 인해 호소력과 은밀한 매력을 갖는다. 제 3의 대안으로서의 성격으로 인해, 현재와 미래에도 부활의 가능성을 갖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드러낼수록 파시즘은 다른 이름과 모습으로 변신하여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 참고문헌 -
김용우, <파시즘>, 김영한·임지현 편, <<서양의 지적 운동>>, 지식산업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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