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드라마의 제목만을 접했을 때는 미성년이나 세기말 천사의 시와 같은 철학적 질문이 가득한 드라마를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추리물이었다.

추리물 매니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추리물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오히려 좋아한다)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드라마였다.

개인적인 경험을 가지고 판단을 하자면, 추리물은 크게 2가지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때 대부분의 사건은 밀실 사건이 된다. 그리고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이때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으로 명탐정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등장한 탐정은 숨어 있던 보석이 빛을 발하듯 눈 부신 활약을 통해 모두가 포기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다.

두번 째는, 탐정보다 범인이 먼저 등장해서 범행을 저지른다. 당연히 이 경우 범인은 다양한 트릭과 함정을 파놓고 탐정을 방해한다. 뒤 늦게 등장한 탐정은 범인이 준비한 다양한 트릭의 오류를 발견해 가면서 사건을 풀어간다.

전자는 '김전일'이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김전일 "범인은 이 안에 있다"라고 외치는 순간 전혀 엉뚱한 사람이 범인이 된다.(김전일에서 범인이 되는 사람들은 정말 범인이어서가 아니라, 김전일 보다 말빨이 딸려서 뭐라고 반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범인으로 몰렸고, 그 화를 참지 못해서 대부분 자살을 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는 '형사 콜롬보' '모래 그릇'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선글라스라도 쓰지 않으면 차마 화면을 주시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탐정의 활약을 볼 우 있고, 후자는 뇌의 주름이 빳빳하게 다려질 정도로 치열한 탐정과 범인간의 두뇌 싸움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증명은 이 두 가지 형식을 동시에 진행 시키고 있다. 그것도 나름대로는 밀실이라는 형식을 취해 가면서 말이다.

두 가지 형식의 사건을 진행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두 가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하나는 한 흑인의 죽음이다. 입구는 양쪽으로 하나뿐인 고가도로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출구의 양쪽에 있던 목격자들은 피해자 말고는 아무도 못 봤다는 증언을 한다. 그렇다면 범인은 어떻게 범죄를 실행한 것일까? 또 범인은 누구인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국인의 의문 가득한 죽음이 이 사건의 주요한 축이 된다.

두 번째는 우연히 한 여자를 납치해서 미필적고의로 죽게 만들게 되고, 초범이었던 범인은 부랴부랴 시체를 암매장하지만, 당연한 수순에 따라 암매장한 시체가 발견이 되고 형사들이 그 범인을 찾아 나서게 된다.

, 이 사건에서는 범인 자체가 초범이었기 때문에 치밀한 트릭은 없지만, 피해자의 남편과 피해자의 내연남이라는 복잡단순한 사연의 커플(?)이 의기 투합해서 증거를 모으고, 범인을 찾아 나서면서 나름대로 활약하는 모습이 나름대로의 재미를 준다.(이 커플(?)을 주인공으로 해서 시리즈물을 만들어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두 가지 사건이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동시에 진행이 되지만, 원작의 치밀함을 잘 살린 덕분에 전혀 산만하지 않게 두 가지 사건이 이를 맞물리며 돌아 가면서, 드라마가 진행될 수록 더욱 흥미진진해 진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마지막 편을 아직 못 본 상태이기 때문에,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는 궁금하지만, 초반에도 말했듯이, 첫 번째 사건은 언제나 전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을 하기 때문에 아마도 9편까지 범인으로 지목 받고 있는 이는 범인이 아닐 것이라고 예상을 한다. 다만 돈만 건네 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마지막 편을 사뭇 두근두근한 가슴으로 기다리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아마도 남편이 아닐까 하지만... 이유야 작가 마음 이기 때문에 여기서 논리적인 추리를 풀어 놓을 수는 없고, 논리가 되지도 않는다. 언제나 탐정이 말하는 논리적인 추리란, 작가만이 아는 정보로 풀어 놓기 때문에, 솔직히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느낌을 가끔씩 받는다. 설득력 제로!)

그리고 핸드폰에 담겨진 그 결정적인 증거자료들을 들여다 보지 않고, 남의 별장 유리창이나 부수는 저 복잡단순한 커플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라는 주옥 같은 격언을 되씹으면서, 답답한 가슴만을 쾅쾅 치고 있다.

, 여기까지 읽고, 혹시 '인간의 증명'을 코미디 추리물로 오해를 하는 이도 있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

우선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어린 시절 받은 상처의 부작용으로 인하여, 적당량의 트라우마를 복용하고 있다고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드라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무거운 편이다. 그리고 가끔씩 날리는 대사들 중에는 모니터가 주저앉을 만한 무게감을 느낄 수도 있다. 마지막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나 역시도 궁금하지만, 코미디 추리물은 아니니까, 무게감 있는 추리물을 원하는 사람은 한번쯤 봐도 시간이 아깝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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