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것인 아닌 남의 권위 뒤에서 호가호위하며 기세등등한 꼴을 보고 있노라면 눈꼴이 시고 배알이 꼴린다. 이건 갑질이라고 부르기도 우습다.

그래서 난 그런 행위를 조롱할 때 그냥 '완장질'이라고 부른다.

근데 이 완장질은 '정승 집 문지기 위세가 지방 현령보다 높다'라는 오래된 속담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전통문화다.

이 완장질이 기나긴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승되고 발전할 수 있었던건, 이 완장이 가진 먼치킨급 버프 때문이다.

이 완장에 부여된 버프는 먼치킨이라는 단어조차 그 효과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부족할 정도로 강력한데, 완장을 차면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에서도 머슴이라는 불가촉천민이 최상층인 양반의 무릎을 꿇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였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머슴을 살아도 정승집에서 살아라'라며 완장질을 권장하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였다.

다만 이 완장에도 큰 약점이 있는데, 완장마다 속성이 있어서 상극이 되는 속성은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다른 속성의 완장질을 막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또 약간의 부작용도 가지고 있는데, 완장을 찬 사람의 기억력 수준을 메멘토급으로 떨어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완장질을 한 사람은 자기가 시전한 완장질은 기억하지 못하고, 자기가 당한 완장질만 기억하게 된다.

이는 완장질에 대한 죄책감을 반감시키면서 완장질이 도태되지 않고 역사와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했다.

하지만 완장질은 그래봐야 완장질이고, 완장을 찬 머슴도 그래봐야 머슴이었다. 신분을 뛰어 넘는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지속 시간은 턱 없이 짧았고, 깝치다가 진짜 '갑'을 만나면 끽소리도 못하고 한방에 나가 떨어지며 생사의 고비를 넘어야만 한다.

뭐 다구리에 장사 없다고, 인터넷으로 무장한 완장질 무리를 만나면 아무리 레벨이 높은 갑이라도 깨갱하며 꼬리를 말 수 밖에 없지만, 완장질은 기억력이 메멘토급이라 그런 기적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상극인 완장들이 지들끼리 서로 죽이네 살리네하며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일이 더 많다. 뭐 그건 완장질 자체가 가지는 생존방식이니 언급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다.

아무튼, 완장질은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의 전통 문화다. 속담에서 확인된 자취만 해도 조선 왕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고, 문헌을 좀더 찾아본다면 선사시대의 시작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역사와 전통을 가졌다.

더군다나 유실되고 사라져가는 다른 전통문화와는 다르게, 그 원형을 유지해왔을 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도 우리의 삶 곳곳에 녹아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이쯤되면 승정원일기나 조선왕조 실록처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해서 남겨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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