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가 국내 최초의 MID라고 주장을 하며 ‘루온 모빗’을 출시하였다.
이 제품을 처음 보는 순간 내 머리 속에서 ‘헛~ 너두 삽질?’이라는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그 하나는 잘못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MID = Mobile Internet Device’로 인텔이 제안한 플랫폼이다. 필수적인 것은 아톰프로세서 중에서 실버손 제품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텔의 까탈스러운 정책상 아톰프로세서 중에서도 다이아몬드빌을 사용한 제품은 MID의 제품군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얼마 전에 ASUS에서 출시했던 특정 제품을 가지고 아수스는 MID라고 강조를 하고, 인텔은 (비공식적으로) MID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튼, 세계일류 혹은 1등 증후군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국내 기업답게, 없는 사실을 있는 사실로 만들어 (넷북과)조금은 컨셉이 틀린 제품을 들고 나온 삼보로써는, 어떤 이유로서든 ‘국내최초’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MID 플랫폼의 제안사이자 공급사인 인텔의 기준으로 보자면 삼보의 루온 모빗은 국내 최초의 MID가 아니다. 이미 무수히 쏟아진 넷북들이 바로 MID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삼보의 마콤팀의 실수인지, 아니면 자기기만인지는 삼보만이 알겠지만, 난 왠지 후자라는 느낌이 강하다.
뭐, 그렇지만 자기최면까지 걸며 ‘국내 최초’라고 우기고 싶은 삼보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삼보가 최근 출시한 루온 모빗은 바로 가장 최근에 ‘훌륭하게 실패한’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최면을 걸어서 장미 빛 미래를 상상하지 않고서는 저런 ‘삽질형’제품을 출시할 용기가 나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아무튼, 삼보는 ‘국내 최초’라고 말하고 있지만, 국내 최초라는 루온 모빗은 나에게는 신선하기보다는 식상하다. 왜냐하면 이 국내 최초(?)의 MID는 바로 얼마 전에 ‘훌륭하게 실패’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UMPC’의 컨셉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삼보의 루온 모빗과 그나마 UMPC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라온디지털의 ‘에버런’의 스팩을 비교해 보자
위의 표를 보면 알겠지만, 기술적 발전에 따른 성능의 업그레이드 부분을 빼고 본다면 삼보의 루온 모빗은 UMPC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액정 사이즈, 운영체제, 인테페이스까지 UMPC를 꼭 빼다 박았다. 아니 오히려 인터페이스 부분은 ‘베가’라는 명기의 판매를 통해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분히 접하고서 그를 반영한 라온디지털의 에버런이 더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훌륭한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UMPC는 뭘 그리도 실패했기에 저런 신랄한 비판을 들어야 하는 것 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기지?)
개인적을 나는 UMPC가 차세대 모바일 디바이스를 이끌 혁명적 기기라고 생각을 했었다.
초기 UMPC를 이끌어온 오르가미 프로젝트에 따르면 UMPC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 시켜야 했다.
가격 : $600~$1,200(US)
무게 : 0.9Kg 이하
무선 : 블루투스, Wi-Fi (기본)
배터리 라이프 : 2.5시간
인터페이스 : 터치스크린
등등등
뭐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켜야만 UMPC라는 타이틀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세계 최초로 삽질 했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지만) UMPC인 삼성의 Q1은 엄청난 가격(당시 환율로 백만원을 가뿐하게 넘어주셨다.) 덜 떨어진 성능, 팔이 끊어질 것 같은 무게(거짓말 0.1g을 더하자면 말이다.)로 ‘울트라 조루 PC’라는 오명을 얻었으며 ‘PDA보다 성능은 좋지만 무겁고, 노트북 보다 가볍지만 성능은 떨어지는제품’으로, 제품 출시 전까지는 세계인의 이목을 한 몸에 받는 귀한 몸이었지만, 출시하자마자 미운오리가 되어 주셨던, 훌륭한 실패작이자 비운의 플랫폼이 바로 UMPC인 것이다. 물론 이후에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던 AMD의 CPU를 사용하고 배터리 성능과 가격 무게등을 해결한 진정한 UMPC에 가까운 제품이 등장을 했고, 또 일정 수요에 맞춰 제품이 판매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UMPC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으니, 바로 UMPC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이라는 인터페이스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인간과 컴퓨터가 소통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언어가 필요하고, 컴퓨터가 인간의 말을 알아 듣기에는 너무도 ‘멍청’하기 때문에 대신 똑똑한 인간이 컴퓨터의 언어를 공부해 줘야 한다. 그리고 그 소통 방식의 절반 이상이 바로 ‘키보드’에서 이루어진다. 인간대 인간의 소통의 대다수가 입으로 이루어 지는 것처럼, 키보드는 인간과 컴퓨터가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는 인간의 입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UMPC는 그 점을 간과 했다. 뭐 외국어를 잘 몰라도 몸짓 발짓으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터치스크린 방식의 인터페이스는 일정 정도 인간과 컴퓨터의 대화를 이끌어 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결국 바디랭귀지가 구술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을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터치스크린은 키보드의 효율을 따라가지 못했고, 이미 키보드에 충분히 익숙해있는 소비자들에게는 커다란 불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작은 차이를 미리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 UMPC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때, 고진샤라는 기업이 등장을 한다. 이미 노트북으로 미미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던 고진샤는 라온디지털의 베가에 채택되었던 AMD의 CPU를 채택하고 터치스크린에 키보드까지 장착한 타블렛PC형태의 UMPC인 SA시리즈를 출시한다. 그리고 당시 국내 UMPC 시장을 선도하던 라온디지털을 따라잡고, 단숨에 UMPC의 명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그리고 여기에 맛을 들인 고진샤는 그간의 주력기종이던 노트북 사업은 거의 접고 오로지 소형PC에만 주력하게 된다.)
물론 이 당시에 삼성에서는 Q1의 단점을 보완하고, 쿼티 키보드를 장착한 Q1울트라를 출시를 하였지만,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방식의 키보드가 장착된 SA시리즈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이때가 국내 UMPC시장의 가장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은 UMPC에게 자비롭지 못했다. 조금은 변형되었지만, 그래도 자리를 잡아가던 UMPC시장에 멸망의 신탁이 내려진다. 그건 바로 ‘OLPC 프로젝트’ 우리에게는 100달러 PC(라고 쓰고 엄청 싼 노트북이라고 읽는다.)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소식이 바다를 건너서 소비자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MIT의 네그로폰테 교수가 OLPC(One Laptop per Child)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교육용PC보급이라는 ‘이상적이지만 실현 가능해 보이는 계획’아래 출발했던 이 100달러 노트북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IT기업이자 CPU업계의 공룡인 인텔이 참여를 하면서 급 물살을 타게 된다. 그러나 결국 인텔과 네그로폰테 교수가 결별을 선언을 하면서 둘은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이때 인텔은 ‘Class Mate PC’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때 참여한 기업이 아수스이고 그 결과물로 탄생한 제품이 바로 넷북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eee PC이다.
이 eee PC의 성공적인 컨셉의 뒤에는 OLPC의 네그로폰테 교수가 있었지만, 더더욱 깊은 곳에는 바로 내가 그토록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UMPC의 훌륭한 실패’가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넷북으로 알려진 이 플랫폼의 구성을 살펴보면, 배터리 라이프를 늘리고 코스트를 낮추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효용성이 낮은 터치스크린을 과감히 포기를 한다. 그리고 역시 코스트를 낮추면서 노트북 시장이 대체효과를 줄이기 위해 노트북 보다는 사이즈가 작은 10인치(이것도 풀린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10인치보다 작아야지만 인텔은 MID의 인증을 해주었고, MS는 단종된 XP를 탑재 할 수 있도록 했다.)대 액정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UMPC에서 가장 큰 실패요인이었던 인터페이스에서도 과감하게 풀사이즈에 가까운 키보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네그로폰테 교수의 100달러 정책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 형성이 되고, 그간의 기술적 발전이 더하여 인텔의 진정한 모바일 플랫폼인 아톰 플랫폼이 등장을 하게 되면서, 넷북은 단숨에 모바일 디바이스의 왕좌를 석권하게 된다.
이 ‘훌륭한 실패와 몽상적이지만 실현 가능해 보이는’ 두 프로젝트의 적자인 넷북의 등장은 그렇지 않아도 간간히 목숨을 연명하고 있던 UMPC 시장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은 사건이 된다.
결국 UMPC의 명가였던 라온디지털 역시 키보드가 장착된 제품을 출시하기에 이르고, 소비자들은 불편하고 멋대가리 없는 UMPC보다는 스타일리쉬하고 편리하면서도 저렴한 넷북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는 제품이 등장하니, 그것이 바로 삼보의 루온 모빗인 것이다.
위의 표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 잘나가는 넷북이라는 플랫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삼보도 넷북을 판매하고 있다) 이 검증된 플랫폼에서 과감하게(혹은 무모하게) 키보드를 빼고,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MID 루온 모빗을 출시한 것이다.
왜? 왜? 왜?
왜? 삼보는 이 실패한 플랫폼을 답습 하려는 것일까?
셀런에 인수되면서 경영이 정상화되고, 슬슬 안정적인 괘도에 오르면서 돈이 남아돌기 시작한 것일까?(설마…) 아니면 모든 안정적인 코스에서 커트 당한 마무리 투수처럼, 유일하게 커트 당하지 않은 ‘한가운데 직구’가 활로처럼 보인 것일까?(진짜?)
‘저기는 안전 할 꺼야’라는 자기 최면에 빠진 마무리 투수처럼, ‘국내 최초의 MID’라는 자기기만만 있으면 타자가 스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던 것일까?(쯔쯔쯔…)
물론 삼보도 제품을 출시 하기 전에 충분한 리서치를 통하여 고객들의 의견을 수렴했을 것이다.
그리고 넷북의 불편함과 PMP의 아쉬움 등을 접목했더니 이런 가당치도 않은 답이 나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틀린 답이라는 결과를 삼보는 인정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 답이 나온 시기가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니다.
물론, 과거의 진실이 현대의 진실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지금은 당연한 지동설 조차 갈릴레이는 소심하게 ‘그래도 지구는 돌아요’라고 읍조릴 수 밖에 없었던 폭력적 무식이 존재를 역사가 증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성향이 그리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또 UMPC의 단점을 보완할 획기적인 무언가가 접목된 것도 아니며, 이것이 3년 5년 10년 전의 결과도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왜! 삼보는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난,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뭐, 내가 여기서 아무리 떠들어도, 이미 제품은 출시가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제품에 대한확신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이 제품을 열심히 팔아야만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늦은 시각, 삼보 사무실에서 ‘그래도 제품은 팔린다’라며 여전히 자신의 소신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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