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가 전파한 미국식 인본주의는 '생명의 소중함'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생명은 일반인(?)에 비하여 우선하는데, 어린이, 여자, 장애인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재난 영화에서 특히 자주 등장하는 미국식 '생명중시 인본주의'는 헐리우드를 넘어, 그들의 문화가 전파된 전 세계의 동일한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고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틀로서 이 사상이 자리를 잡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이 낳고 헐리우드가 전파한 이 사상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를 '생명'에만 부여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잘 될것이라는 근거없는 희망을 강매하며, 어떤이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삶'을 강요한다.


개인이 처한 상황과 그 '삶'의 고단함은 고려의 대성이 되지 않는다.


낙태 반대 운동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다루면 안된다는 논리는 일견 숭고해 보이지만, 평생을 경멸에찬 타인의 시선속에 살아야하는 새로운 '생명'과 원치않았던 '생명'의 반평생을 책임져야하는 그 부모들의 경제적 환경이나 삶에 대한 배려는 거의 담고 있지않다.


그렇게 수 많은 '삶'을 가시밭위에 올려 놓았음에도 그들은 그 삶에대한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체, 한 생명을 살렸다는 자기만족에 취한 고주망태가 되어 또 다른 희생자를 찾는다.


'악의는 사람을 좀먹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사람을 궁지에 몰아 넣는건 무지하고 천진한 선의다'라는 말은 저들을 가르키는 말일 것이다.


그래도 무지하지만 선의를 가지고 있는 저들의 근거없는 희망은 차라리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세간의 인식을 악의를 가지고 이용하는 족속들이다.


2000년,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면서 파업의 현장에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다. 바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한 사람이 평생을 모아도 모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붙여놓은 수 많은 소송들이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삶을 망치고 있다.


가정이 깨지고, 인간 관계가 무너지며, 세상에서 고립되어거는것을 노린 신의 한 수.


'개구리만 살려두고 연못을 파괴하자, 그럼 세상은 개구리를 외면할 것이다.'


절대로 개구리를 맞추지는 않으면서 개구리가 뛸 방향을 모두 차단해 버린, 개구리의 사각에서 던지는 공포, 치밀한 계산으로 무장한 철저한 악의!


우리가 헐리우드식 인본주의에 취해 생명에 주목하고 삶을 외면할 때, 그 틈새를 노린 저런 악의가 세상을 좀 먹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어째서 소중한가?


왜 생명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가?


그 가치안에서 무너지는 삶은 어째서 존중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는가?


개똥밭에 구르는 삶이 정말 죽음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가?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그 삶의 무게를 모른다면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것은 의미없는 '생명'이 아니라 가치있는 '삶'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세상이 삶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여러분의 삶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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