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귀차니스트의 단축키 적응기. <<

내가 아는 그는 왜 태어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니, 태어난 거야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왜 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움직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될 수 있다면 최소한의 운동량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해 무척 노력을 하는데, 그 노력을 다양한 그 쓸모없이 다양한 곳이 아닌,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방향으로 돌린다면 아마도 대성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사람이다.

습성은 나무늘보, 아니, 그보다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자바헛'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의 생활 습관과는 다르게 그는 무척 마른 타입이었고, 그의 생활 패턴을 봤을 때, 그런 깡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특히 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는,세계 7대 불가사리보다 더 큰 의문이 되었다.

아무튼, 어느 날, 필연적으로 그의 집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날 그는 나에게 몇몇의 파일을 넘겨줘야 했는데, 그의 귀차니즘은 나와의 약속시간이 다가올 때 까지 해놓지 않은 상태였고, 결국 내가 그의 방으로 쳐들어가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날, 그가 나에게 줘야 했던 파일은 약 CD 한 장분의 이미지 파일과 3~4개의 문서 파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작업의 80%만 진행해 놓은 상태였고, 난 그의 방 침대에 누워서 그가 작업을 할 동안 그의 책장에서 찾은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신경이 거슬렸던 건, 그의 기계식 키보드가 마치 글을 쓰듯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뭔가 정리된 상태의 글을 쓰는 빠르고 경쾌한 키보드의 리듬도 아니고, 마치 하나하나의 고민을 모니터 화면에 찍어 나가며 글을 쓰듯이 아주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그의 키보드는 기계식 특유의 떨림으로 내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아니 이 인간이……. 글을 다 써놔서 이제 자료 정리랑, 보충자료만 정리해주면 된다더니, 지금에야 글을 쓰는 거 아니야?'

뭐, 그렇게 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의 게으름은 벌써 몇 번이나 경험을 했고, 당연히 마감 따위(?)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건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마감도 하루정도 앞당겨서 말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야 원고를 시작한다는 건 명백한 의지의 실종이고, 계약 위반이었다.

아무리 이쪽 업계에서 소문난 귀차니스트라 할지라도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난 슬그머니 일어나서 그의 뒤에 서서 그의 작업하는 냥을 보고 있었다. (아니 감시를 하고 있었다.)

난 그만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말았다.

그는 인터넷에서 링크를 클릭하는 것과 이미지를 편집하는 것 말고는 거의 모든 작업을 키보드만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파일의 이름을 정리하는 것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종료하고 특정한 폴더를 열고 그 파일의 내용을 확인하고 각 프로그램들의 사이를 휙휙 넘나드는 것조차 키보드만으로 해결을 하고 있었다.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혀를 휘두를 수박에 없었는데, 그가 일을 하는 속도가 나의 2~3배는 되는 듯이 보였다. 컴퓨터라는 기계가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얼마나 빠른 처리속도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한다면 난 완전히 거대한 계산기를 쓰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그 느릿느릿한 키보드 소리는 뭔가를 쓰는 소리가 아니라, 바로 각 기능을 마우스가 아닌 키보드로 처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들리는 소리였다.

아무튼 그 놀라운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난 이미 그가 넘겨준 자료를 받아들고 사무실 내 의자 앞에 앉아 있었다.

난 며칠 후 그와 만난 자리에서 그때의 이야기를 감탄하듯이 말 했을 때, 나의 감탄사를 의문사로 착각한 그는 아주 간단한 답변을 나에게 전해줬다.

'얼마나 귀찮은데요. ‘

.............................

이 글은, 이 말 같지도 않은 감탄사가 의문사가 되어 되돌아온 답변에, 의문사로 대답한 나의 현명함이 가져온 결과의 기록이다.

-그의 이야기

전 DOS시절부터 컴퓨터를 사용해 왔거든요, 처음에 게임을 위해서가 아닌, 운영체제를 위해서 마우스를 사용해야 한다는 상황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뭐 나중에는 천천히 적응이 되었는데, 정말 아무리 참아도 끓어오르는 짜증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거예요. 바로 위치를 클릭하고 거기에 글을 쓰기 위해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번갈아 가야 한다는 것이었죠.

예를 들자면 웹브라우저의 주소창에 주소를 쓰기 위해서 마우스로 그곳을 클릭하고, 다시 거기에 주소를 써야 하는 번거로움 같은 거요.

뭐, 하나의 예를 든 것 이지만, 이런 상황의 의외로 많이 발생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차피 윈도우를 써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마우스나 키보드 하나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을 해서 둘 중에 하나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정말 최선의 그 방법은 없고, 둘 중에 하나를 약 8:2의 비율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죠, 그게 바로 단축키에요.

그리고 그날 보신 게 그 노력의 결과물이에요.

(뭐, 첨언을 하자면 그가 '노력'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처음에는 윈도우의 단축키를 찾기 시작했어요.

정말 안 해본 조합이 없었어요. Alt나 Ctrl Key의 조합에서부터 펑션키의 조합까지 찾아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키 조합을 차아내서 각종 단축키 기능을 정리해 가기 시작했어요.

정말 많은 부분을 찾아 낼 수 있었죠. 특히 Windows key 조합이 정말 절 쇼킹하게 했는데, 제가 당시에 사용하던 키보드는 윈도우 키가 없는 103식 기계식 키보드였거든요. 그 당시에는 지금의 표준 자판인 106식 기계식 키보드가 없던 시절이라 결국 윈도우기 조합을 쓸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멘브레인 키보드를 썼던 슬픈 과거가 있을 정도로 윈도우 키를 조합한 단축키들은 효과가 좋았어요.

하지만 그 역시도 역시 한계가 있더라고요.

특히, 가장 큰 문제는 탐색기에서 지원하는 파일 관리의 문제와 각종 프로그램을 실행 시키는 문제였어요.

윈도우 바탕화면에 있는 아이콘의 정보에서 단축키를 설정해서 실행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전 이게 실행이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윈도우 버그라고 생각했거든요

(뭐, 또 첨언하자면, 그가 단축키와 혈투를 벌이던 때를 생각해보면, 국내 최대의 회원을 가지고 있던 Blue's Love는 한 회원에게서 시작된 윈도우 바이러스가 전체회원에게 퍼지면서 결국은 와해되고 말았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였고, 모 학교의 월요일 조회시간에는 전체 학생의 32.34%인 472명이 올라가던 태극기의 반원에 들어간 파란색을 보고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는 이야기가 일간지 헤드라인으로 올라오던 시절로 , 국내최대의 해킹 BBS옅던 '나눠누리'는 VAT창이 파란색이라서 사용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바탕화면을 하얀색으로 만든 윈도우 전용의 브라우저를 출시하기도 했을 정도로 모두가 blue screen이라는 10자의 알파벳에 녹다운 되고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래서 잘 작동하던 기능이 오작동하면 윈도우 탓이었고, 안되던 기능이 당연히 안 되도 윈도우 탓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저냥 쓰고 있었던가 봐요, 가끔 BBS에 그에 관련된 글이 올라오는데, 제 주변에는 없는 게 조금은 의문스러웠지만 제가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다른 방법을 모색했어요.

그게 다름 아닌 bat파일을 만드는 거였어요.

Dos에서도 M을 쓰기 전부터 PCtools가 좋기는 했지만 뭔가 아쉬웠을 때가 있었거든요. 일일이 패치 걸어서 실행시키는 것도 과거에 1bit를 얻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던 저로서는 좀 찝찝했고요. 그래서 좀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다 bat로 만들어서 AUTOBAT.BAT 안에는 path="c:sum_BAT/" 이렇게만 해놓고, 자주 쓰는 프로그램은 다 그 안에 넣어놨거든요.

그래서 어차피 윈도우도 도스의 확장이라는 생각에 작업을 시작했어요, 우선은 내가 설치 한 프로그램의 배치파일을 만들어서 정리를 했어요. 거기까지는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바로 윈도우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파일들을 어떻게 정리하느냐 이었어요. 뭐 경로에 좀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단축아이콘 일일이 눌러보면서 뭐가 뭔지는 다 찾기는 했는데, 생각지도 않던 문제에 걸리고 말았어요.

더 이상 새로운 파일 이름을 떠올릴 수가 없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단축키를 대신해서 쓰기 위해서 만든 배치 파일의 이름은 최대한 간단해야 한다고요.

아무리 용서한다고 해도 3자 이상을 넘어가면 안 되고 3자로 가능한 모든 조합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 프로그램의 특성을 나타내 줄 수 있는 이름이 아니면 의미가 없단 말이에요.

즉 포토샵을 실행시키는 파일의 이름은 ph.bat, 윈도우용 이야기는 iw.bat 이렇게 만들어 가는데 도무지 각 기능을 연결할 수 있는 조합이 mmj.bat 이후에는 생각도 안 나고,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또, 다시 참견을 하자면, 그는 최대한 자신이 쓰기 편한 bat파일을 만들기 위해서 각종 조합을 다 생각해 봤다고 한다. 결국에는 한글의 초성만 따서 계산기는 ggg.bat(계산기의 변형으로 그는 '계삼기'라고 불렀다고 한다.)라고 만들었는데, 막상 쓸 때는 ksk.bat를 치는 바람에 계속 오류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폭발을 하고 만 것이다........... )

뭐, 그래서 결국은 윈도우 자체를 포기하고 도스만 쓸려고도 생각을 해봤어요. 당시만 해도 윈도우가 아니어도 Dos에서 돌아가는 어플리케이션은 많았거든요. 아래한글 96만 해도 윈도우3.1에서도 돌았으니까, 어찌어찌하면 그냥 쓸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역시 대세는 윈도우더라고요. 결국 각종 프로그램들은 더 이상 Dos를 지원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 프로그램은 32bit전용 환경에서만 작동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윈도우 3.1에서 이 메시지를 표시하는 프로그램들이 하나씩 늘어나더니 결국 윈도우 95이상의 환경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되더라고요.

뭐, 두 손 들고 MS에 항복하고 말았죠.

저도 결국은 윈도우 98을 설치를 하게 된 거죠.

하지만, 여전히 마우스와 키보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저의 오른손은 결국 자신이 있어야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을 하더라고요, 아마도 제가 오른손으로 담배를 피기 시작했던 것도 그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때 그의 눈동자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결국 이대로 오른 손을 방황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내가 나의 오른손을 지켜줘야 한다.

그래서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금방 되는 일은 아니더라고요.

우선은 윈도우 단축키야 대충은 외워둔 상태였고, 윈도우 기본기능은 그냥 바로가기 아이콘으로 쓰고, 자주 쓰는 프로그램만 bat파일로 사용을 하기로 나름 타협점을 찾은 거죠. 그런데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어요.

바로 그 이름도 찬란한 정보의 쓰레기장 'internet'의 시대가 온 것이죠. 확실히 느꼈는데 그때 오른손은 위기를 느꼈어요.

적어도 VT로 모든 것이 해결이 되던 BBS시절만 해도 마우스는 거의 쓸모가 업고, 오른손은 각종 명령어를 넣고 엔터키를 때려주면 되었지만,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넘어가면서 더 이상 마우스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거에요.

텝 키와 텝+스페이스의 조합으로 링크를 눌러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도무지 마우스로 뭔가를 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단축키와의 새로운 전쟁에 돌입을 했죠.

하지만 이번 정쟁은 이전의 전쟁하고는 틀렸어요.

'절대 마우스와 타협할 수 없다'던 옛날의 단호하던 모습은 많이 누그러들었고, 그래도 그사이에 나이 좀 먹었다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다.'라면서 세상과 타협(?)을 할 줄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3가지 규칙을 만들어놓고 이 중에 2가지만 만족하면 그 방법을 채택하기로 한 거죠

1. 최소 한번만 세팅해 놓으면 될 것

2. 세팅이 간편해야 한다.

3. 가능하다면 설정 파일을 백업해 둘 수 있어야 한다.

즉, 컴퓨터를 포맷하지 않는 한 다시 세팅할 필요가 없어야 하고, 컴퓨터 포맷 이후에도 간단하게 세팅할 수 있어야 한다. 단 복잡하다면 그 경우는 설정을 그대로 복사해서 쓸 수 있는 백업파일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 3가지 원칙 중에서 2가지만 만족하는 상황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역시나 그런 기능을 찾기는 쉽지가 않더라고요.

2개는 고사하고 1개도 만족하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누군가는 레지스트리도 건드려보고 그 관련 파일을 저장해 놓고 쓰면 좋지 않겠냐, 라는 제안을 한정도 있었는데, 정말 그거 시도하다가 6개월 사이에 윈도우98을 98번은 깔아본 것 같아요. 순전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그는 윈도우의 새로운 기능을 많이 발견했고, 그런 팁을 모아서 bbs에 자주 올리곤 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그것이 거의 취미 생활이 되었는데 특히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기능을 발견해서 게시판에 그가 처음으로 그와 관련된 게시물을 올릴 때는, 처음 삼국지1을 클리어하고 엔딩을 볼 때 보다 더 감동했다고 하니 그가 단축키와의 혈투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만했다. 그리고 난 그가 앞에서 '노력'이라는 단어를 쓴 의미를 이때서야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 그 게으른 그도 '노력'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아무튼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오른손도 지치고, 저의 마음도 지칠 무렵 엄청난 제보를 받은 거예요.

(그날 그가 받은 메일의 내용은 대충 아래와 같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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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님 안녕하세요.

님께서 올려주시는 팁은 언제나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생략-

오늘 누군가에게 언뜻 들은 말인데 시작메뉴에 있는 특정 프로그램의 아이콘의 이름 뒤에 '&알파벳' 조합으로 단축키를 만들어 놓으면 윈도우 키와 조합으로 특정 프로그램을 마우스 없이 실행 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해보기는 했지만, 잘 안되더라고요, 하지만 XXX님은 내공이 높으시니까 방법을 찾으실 수 있을 지도 모르죠. 그럼 즐통하시고 나중에 대화방에서 함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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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기억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고 하지만, 아이디조차 까먹었다니.... 그는 몸만 게으른 것이 아니라, 기억력조차 게으른 게 아닌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

즉, 윈도우의 시작 버튼을 눌러서 나오는 메뉴에 들어있는 그 무수한 아이콘 뒤에 단지 &기호와 알파벳으로 조합을 하는 것만으로 마우스 없이 프로그램을 단숨에 실행 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이 메일을 받자마자 나는 거의 환호를 부르짖으며 당장 실행해 봤지만, 그 환호가 욕으로 변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도 걸리지 않았어요.

아무리 눌러도 프로그램이 실행되기는커녕 거의 반응이 없는 거예요.

곁에서 지켜보던 왼손도 좀 짜증이 났는지 갑자기 윈도우 키와 단축키로 지정해둔 알파벳 키를 '우다다다다'누르는데, 오른 손도 움찔하더라고요. 그런데 순간 이야기 프로그램이 실행이 되는 거예요.

오, 놀라고 말았죠.

아, 뭔가 방법이 있구나..... 희망이 보였어요.

전, 정말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조합들을 일일이 눌러보기 시작했어요.

오른손이 모든 키보드를 누를 동안 윈도우키위에 올려져 있던 왼손은 긴장해서 빈혈로 쓰러질 뻔했었다니까요.

그러다 결국 방법을 알아냈죠.

문제는 키의 조합이기 때문에 동시에 눌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고정관념을 버려야 했던 거예요.

즉, 윈도우기를 눌러서 시작메뉴를 호출한 후에 그 메뉴가 뜨고 나면 지정된 키를 눌러주면 되는 거였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이야기&i'라는 단축키가 있다면

윈도우 키를 누른다 ―> 시작 메뉴 바가 열린다 -> 확인한다 ―> 지정된 단축키 i를 누른다.

단 여기서 지정할 수 있는 단축키는 한계가 있는데, 그 등록된 메뉴 아래에 있는 기본 기능들에 주어진 키가 중복될 경우에는 단번에 실행이 안 되는 거죠.

즉, 'ACDsee &D'를 설정해 놨다고 가정을 했을 때, i의 경우는 중복된 기능이 없기 때문에 단번에 실행이 되지만 D의 경우는 '설정(D)' 메뉴와 기능이 중복되기 때문에 결국 D를 여러 번 눌러서 원하는 메뉴를 선택한 후에 다시 엔터를 눌러줘야 했던 거죠.

(뭐, 그가 나에게 이야기를 해줄 때는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 했지만, 그의 표현을 빌자면 결국 몇 날 며칠을 고생을 했다고 한다. 키보드의 윈도우 마크가 단 1주일 만에 지워졌을 정도로 비비적거렸다니,.... 하지만 그의 독특한 취향은 그때 또 다시 나타났는데, 그는 그때를 피우던 담배를 한층 더 깊이 들이마셨는데, 그 표정이 마치 첫사랑의 기억을 아련하게 되새김질 하는 송아지 같았다. 더군다나 저 독한 88을 저렇게 깊이 들이 마시다니.... 폐에 구멍날까봐, 보는 내가 다 걱정스러웠다.)

뭐,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어요.

역시 뭐든 막히던 부분이 뚫리고 나면, 나머지는 그 물길을 따라 한 번에 흘러간다고 할까요?

뭔가 부족해보였던, 탐색기나 윈도우용 'M'은 느지막이 나타난 'TC(Total Command)'가 모든 것을 해결해줬죠.

특히 TC가 좋은 건 거의 모든 기능을 사용자가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거고, 단축키조차 모두 설정할 수 있어서 너무 편했어요. 조합도 다양했고, 그래서 그때부터는 거의 모든 기능을 키보드로만 쓰게 되었죠.

그리고 이제 브라우징도 자잘한 부분은 단축키를 찾아서, 주소를 칠 때는 'Alt+D'를 이용하고 텝키나 백스페이스 등등등 다양한 조합을 찾아서 그나마 마우스를 덜 쓰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리고 그제야 이제 오른손은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듯이 방황을 멈추고, 조용히 영타의 학습에 힘쓰게 되었어요. 그때까지는 한타만 약 450타 나오고, 영타는 200타 나오기도 힘들었거든요.

뭐, 조금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저에게는 나쁜 기억은 아니에요, 덕분에 다른 어플리케이션도 단축키를 대부분 기억하는 버릇이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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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그가 그날 했던 이야기를 간단하게 간추린 것이다.

난 그의 이야기에 살짝 감동을 받기도 했다.

내가 그를 생각했을 때는, 그는 정말 세상에 무심했다.

난 그가 왜 살고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그의 표정은 모든 것에 시큰둥했고, 눈에서는 열정을 찾을 수 없었고, 모든 일은 정말 먹이를 얻기 위한 마지못한 행동이었는데, 그에게도 이런 열정이 있었을 줄이야…….

난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그가 전해준 노하우를 하나둘씩 실험해 봤다.

역시, 남이 찾아놓은 모든 것을 후발주자가 따라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도 그가 전수해 준 노하우가 없었다면, 무척 고생을 했겠지?

다만, TC의 경우는 그간에 내가 써오던 환경과 너무도 틀려서 당황스러웠지만, 이는 그에게 짧은 조언을 더 구함으로써 나에게 맞는 환경을 적절하게 세팅해서 이제는 몇 년을 써온 탐색기보다 더 편하게 쓰게 되었다.

아직도 나의 키보딩은 그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이지만, 이제 나도 조금은 자부심을 가지고 남들 앞에서 컴퓨터를 쓰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마눌님에게 전해 줬을 때 마눌님의 단순한 평은 나의 불타는 감동을 남극 하늘아래 빙하 속에 가둬 놓고, 그가 흘린 1리터의 땀방울을 10급수로 전략시켜 버렸다.

"뭐야? 결국 오른손을 마우스가 있는 쪽으로 30cm 움직이기가 귀찮아서 그 고생을 했다는 거야? 바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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