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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녀들에게…
우연히 게임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서 모 사이트에서 일어난 사건을 접했습니다.
그 사건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자잘못을 떠나서 저에게는 동인을 즐기는 이들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의 개요를 놓고 보자면 이렇습니다.
‘동인들이 모인 거대 사이트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독자들이 작품을 더 쉽게 접하게 하기 위해서 운영진들은 고심을 합니다. 그 고심 끝에 모 사이트에서 이용하는 방법인 카테고리 형식을 빌려오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막상 그 방법을 쓰기로 하긴 했는데, 과연 이 작품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고민끝에 운영진 측에서는 미인공. 지랄수. 임신수. 광공집착. 연약수등등으로 장르를 구분합니다.
이제 운영진은 이렇게 카테고리를 분류를 해 놓고 한숨을 돌렸는데, 이제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자신의 작품을 저렇게 졸렬한 단어로 싸잡는 것이 기분이 나쁜것이지요. 그래서 그에 대한 비판의 글을 올립니다. 난 저 카테고리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라고… 그리고 몇몇 주체 못한 감정을 표현한 단어들로 뒷담화를 나누셨나 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운영자께서 그와 관련된 분들의 소설삭제와 탈퇴를 권유하셨고, 제가 전해들은 최종적인 결과는 관련자 강퇴, 관련자 작품 삭제, 관련자 아이디 금지어 등록 등등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자, 이게 제가 아는 한에서 이 사건을 정리한 글입니다.
그런데 야오이를 즐겨 보지 않는 저에게는 큰 사건이 아닌데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된 이유는 바로 야오이의 대표적인 사이트에서 나눈 저 카테고리 혹은 장르의 독특함에서 눈을 땔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오이에 관해서 생각해 봅니다.
야마나시(やまなし), 오치나시(おちなし), 이미나시(いみなし) [주제 없고], [소재 없고], [의미 없다]라는 뜻의 앞 글자만 모아 만든 신조어 야오이는 아주 적나라하게 이 장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오이에 대한 많은 작품을 접해 보지 않았지만, 제가 접한 몇몇 작품을 통해서 보자면,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글이지만, 전 오히려 그 자유로움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심플한 인테리어 쪽으로 익숙하지만, 미니멀리즘은 순수문학의 한 장르에서 시작했고, 조소나 회화로까지 발전하였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미니멀리즘 소설은 상당히 당황스럽습니다.
주제도 찾을 수 없고, 소재도 찾기가 힘듭니다. 인과된 내용 역시 없습니다. 언뜻 보면 무수한 단어의 나열이 모여서 하나의 문장이 되고, 또 그 문장이 모여서 의미 없는 단락을 만들어 놓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이런 미니멀리즘에 관하여 노인과 바다로 우리에게 친숙(?)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만약 한 산문 작가가 자신이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생략하여 버릴 수 있으며, 작가가 충분히 진실되게 글을 쓰고 있다면 독자들은 마치 작가가 그것들을 진술한 것과 마찬가지고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빙산이 움직이는 위엄은 오직 8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물 위에 떠 있다는 데에 있다.”
어떠세요? 저 문장을 단순하게 놓고 보자면, 나시라는 단어로 점철된 야오이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물론 두 장르의 소설은 전혀 다릅니다. 미니멀리즘쪽의 작가들은 일부러 그것들을 배제 하기 위해서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야오이쪽의 작가들은 ‘나시’로 대표되는 자신들의 작품에 많은 것을 넣고자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간간히 좋은 작품들도 나오곤 합니다.
하지만 두 작품이 성격이 전혀 틀리다고 할지라도 헤밍웨이의 말을 한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아직 야오이 작가들 사이에서 조차 정립되지 않은 작품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죠.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라는 말을 수용하는 측(주로 저 같은 어리버리 독자)이 있는가 하면, 비록 나시로 시작된 장르이지만 지금은 많이 발전하여 문화의 한 장르로서 자리를 잡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주로 열혈 작가들과 독자) 사람들이 있지만, 이런 논쟁은 대부분 어떤 결론을 끄집어 내기 보다는, 격앙된 감정 표출만이 있는 소모적인 말싸움으로 끝나고 말더군요.
최근 야오이에 대한 시장성이 다시금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98년에는 언론학회 학술대회에서 논문까지 발표되었죠[1], 또 비록 국내의 소식은 아니지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칼럼에도 일본의 야오이 시장에 관한 기사[2]가 올라와 있는 것은 기본이고, 한겨레21의 322호에도 하나의 문화로서 야오이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습니다.[3] 예를 든 것은 야오이라는 마이너 장르가 언제나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는 메이저 시장의 예를 든 것 이지만, 대중매체는 아니더라도 만화나 문화와 관련된 각종 중소 웹진에는 대부분 야오이에 대한 기사들이 한둘씩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음, 정확히 이야기 하지만 동인지 시장이라고 해야겠지만, 동인지의 주요 작품들이 야오이인 시점에서 각 기사들이 야오이를 배제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의 시각은 점점 야오이에 대한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뀌고 있는데, 정작 그 작품의 생산자 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대하여 부끄러운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더군요.(이건 어디까지나 저 자신의 한정된 시선에 머문 모습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럼 또다시 삼천포로 빠져 봅시다.
한때 홍대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단어는 클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클럽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인디밴드였죠. 처음에는 소수의 집단이 즐기는 특별한 문화였습니다. 거기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소수의 특수 집단은 대중이 되었습니다. 이런 가능성 있는 시장을 거대 자본이 그냥 놔두겠습니까?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고, 이제 인디음악은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로 격상을 합니다.
자우림, 클라잉넛, 패닉등은 이미 웬만한 대중가수들 보다 더 많은 열혈팬들의 지지속에서 그 인기를 꾸준히 구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야오이와 같았습니다.
그들도 자비를 쏟아부어 스스로 음반을 찍었고, 그 판매 시장은 자신이 연주하는 클럽을 방문하는 소수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본의 눈에든 밴드는 그럴싸한 음반을 만들어 메이저 시장에 진출을 합니다. 그간에 뻔했던 음악만을 접했던 대중들에게 그들의 음악은 신선했고,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들의 음악에 열광하지만, 정작 그 동안에 그들의 음악을 즐기거나 그들과 같이 음악을 했던 이들에게는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야오이는 어떤가요?
전 왜 당신들이 거대 시장으로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본의 참여가 있을 기회가 없었나요?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더군요. 서울문화사에서 2002년에 출간한 모음집 ‘Youth’나, 꾸준히 야오이물을 출간하고 있는 현대지능개발사 같은 출판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거대 자본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자본의 참여는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해적출판사를 따지면 더 많겠죠) 그런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요? 당신들도 1990년대의 다수의 인디밴드들과 그들의 팬들처럼 그들을 변절자라고 손가락질 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마도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출판시장에 진출한 것에 관하여 비판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럴을 존중하여 순수하고 깨끗해야 할 이 땅의 청소년들을 보호 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고, 그들은 그 의무를 소홀히 하였기에, 그들을 비판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1990년대의 그들과 당신들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대중이 향유하지 못하는 문화는 죽은 문화입니다. 신라시대의 향가가 비록 교과서에 실려있다고 하지만, 이는 신라멸망이 이후에 아무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가 실려있는 것이 다입니다. 고려가요는 어떤가요? 역시나 시대가 흘러갈수록 아무도 즐기지 않기 때문에 사장된 문화일 뿐입니다.
그 내용을 보자면 야오이는 고려가요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만, 그 역사까지 닮으시려고 하시나요? 음지에서 음지로 전해진 후에, 나중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그런 문화가 되기를 바라시나요? 그런 것을 원하시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전 야오이로 대표되는 동인문화가 당당하게 수면위로 올라와야 한다고 봅니다.
크게는 성의 소수자를 억압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 그들을 대변하는 문화가 되어야 하고, 작게는 그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떳떳하게 자신의 취향을 말할 수 있는 개기를 마련해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남자와 남자가 연인 사이로 등장을 합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명확히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은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자신에게 혼란스러워 하죠, 더군다나 그에게는 지켜야 할 가정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점점 그에게 끌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긴 키스를 나눕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TV를 통해서 안방으로 타고 듭니다.
이런 것이 가능할까요?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가능합니다. 1999년 KBS2TV에서 ‘슬픈유혹’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작품의 주요 내용입니다.
작가는
다음날 인터넷은 난리가 났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비난의 글도 있었지만, 대부은 호평을 했습니다. 특히나 기존에 터부시했던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한 계단 높여준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을 정도죠. 그리고 저도 다음날 출근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당당히 그걸 봤냐고 물어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대본을 당신이 쓰고, 무명의 배우가 연기를 하고 무명의 감독이 연출을 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리고 당연하게 이 작품은 메이저 방송사가 아닌, AVI파일로 인터넷을 떠도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도 이 작품이 이처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이 마이너와 메이저의 힘이고, 브랜드화된 힘입니다.
그래서 전 당신들에게 당당히 자본에 손을 벌리고 메이저로 나서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가지 문제가 남았습니다. 바로 위에서 말했던 장르의 분활 문제입니다.
과연, 당신들이 메이저에 진출을 하고서도 저런 장르로 자신들의 작품을 구분하겠습니까?
책의 소개에 당당하게 ‘이책의 장르는 임신공, 지랄수, 광공집착, 연약수’라고 쓰시겠냐는 것입니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 음악프로에서 아주 참신한 기획을 했습니다. 바로 인디밴드들의 라이브 기회를 주겠다는 거였죠. 그때 한 인디밴드가 무대에 올라와 자신의 성기를 노출 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더 오래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역시 한 음악프로에서 인디밴드를 소개를 했는데, 이 밴드가 무대에 올라와 FUCK YOU를 뜻하는 모션을 취하며 카메라에 침을 뱉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둘 다 상당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이는 많은 인디밴드를 욕보이는 사건이 됩니다.
물론 그런 행동들이 클럽에서는 받아 들여 질 수 있습니다. 클럽을 찾는 이들은 그들의 그런 행동들에 익숙하고, 또 그것을 즐기고, 혹은 그런 행동들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참가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메이저라는 것은 소수의 팬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잠정적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전 만화나 영화 애니메이션도 좋아하지만, 일본드라마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 주변에는 저에게 이런 장르에 대한 작품을 추천해 주기를 바라는 친구들이 몇몇 있습니다.
당연히 전 그들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추천해 줍니다.
그렇게 꾸준히 추천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가 망설여지는 부분에 도달합니다. 그 작품들은 제가 별 다섯에 다섯을 줄 정도로 무척 좋아하는 ‘노지마 신지’의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립스틱’ ‘미성년’ ‘인간실격’등은 제가 아무리 좋아하고,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일본드라마에 재미를 느꼈다고 해도 함부로 추천을 해 줄 수가 없죠.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노지마 신지의 사회비판물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인데, 직설적인 화법과 걸러지지 않은 폭력은, 나중에는 연출이나 작가가 노지마 신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 만으로도 보는 것이 살짝 두려워질 정도의 충격을 줍니다.
이런 작품은 일본드라마를 막 접한 사람에게는 양날의 검이고, 재미를 붙인 사람에게는 하나의 전환점입니다. 전자는 그 작품에 완전히 매료되어 일본드라마에 푹 빠져들거나, 아니면 그걸로 모든 일본드라마를 판단해 버리고 완전히 기회를 단절해 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고, 후자는 그런 사회비판물에 눈을 뜨거나, 아니면 여전히 소프트한 것에만 집착하게 되는 개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추천할 기회가 생기면 항상 심사숙고를 하게 됩니다.
작품 자체가 주는 충격이 이러할 진데, 하물며 작품의 가장 기초적인 정보라 할 수 있는 장르의 구분에 저런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단어들을 달아야 하는 걸까요?
조금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나의 취향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보기에 좀 이상하다고 할지라도 다른 이들의 취향을 매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전 그들이 언제나 사회의 뒤쪽에서 자기들만이 모여 수근 거리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것을 좋아할 때, 그것을 접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안타까움을 느끼기에 장문의 리뷰를 쓰는 것처럼, 다른 장르의 작품들도 수면위로 올라와서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렇게 소비층을 형성하여, 이 땅의 또 다른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기를 바라기에…, 그리고 그 작품을 생산하는 이들에게또 다른작품을 생산할 여력을 나눠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 기본적인 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히 말하자면, 끝까지 저런 장르를 고집해야 한다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자신의 작품에 애정이 없는 것이고, 그 고집쟁이가 독자라면 그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사람이며, 자신의 취향이 자신의 것이기만을 고집하는 편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들의 고집 때문에 결국은 자기들과 같은 추구를 하는 많은 사람에게 욕을 먹인 몇몇 인디밴드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장문의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와는 거의 상관없는 사건이었지만, 조금은 그 편협함에 가슴이 답답하고, 또 그것이 제가 판단하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결과로 끝을 맺은 것 같아, 작은 안타까움에 이렇게 졸문을 늘어놨습니다.
누가 이 글을 볼지 자신은 없지만, 혹여 관계자 되시는 분들이 본다면, 좀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사건이 매듭지어 지기를 바랍니다.
2년간의 기획, 2달간의 집필기간. 일곱 번의 대본 수정, 50번이 넘는 퇴고. 나는 지금껏 이렇게 힘들게 대본작업을 해본 경험이 없다. 이 글을 쓰기위 해 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내 모자른 머리탓이었을까, 아니면 닫힌 마음때문이었을까. 지금도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이 작품이 잘됐느냐, 못됐느냐 방송이 된 지금에 와서 그것을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작품을 만드는 내내 감독과 나는 정말 진지했다. 우린 대본 을 쓰는 시간보다, 촬영을 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 작품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가 이 사회의 굳은 편견을 조금이라도 흔들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경건해하고 있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께선 드라마가 세상을 조금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는 믿음 때문에 글을 쓰신다고 했다.
나 역시 그것이 드라마를 쓰는 이유다. 혹자는 이 드라마를 두고 역겹다고 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쓴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다. 이 세상 사람들 어느 누구도 나와 다르다고해서 소수라고해서 소외됐다고해서 손가락질 받을 이유는 없다.
나는 내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에게 이렇게 가르칠 것이다.
언제나 소수의 편에 서라, 너와 다른 사람을 인정해라, 소외된 사 람을 등돌리지마라, 그리고 혹 네가 소수에 끼는 사람이 되더라도 소외받 는 사람이 되더라도 좌절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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