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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だいま (다다이마) 다녀왔습니다.
おかえいなさい (오까에리나사이)다녀오셨어요.
さようなら。(사요나라) 안녕
일본에서 생산된 작품을 보다 보면, 중요한 순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저 세단어이다.
1. 'ただいま'와 'おかえいなさい'
카메라는 문을 비추고 있다. 이후 곧 카메라는 자신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차분하게 내려앉은 집안의 공기를 보여주면서 다시 문을 비추고 있다.
이어 힘없는 발소리가 들리고, 한 꼬마가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온다. 그리고 빈집을 향해 듣는 사람 없는 인사를 한다.
"ただいま~"
현대 한국사회와 크게 다를게 없는 일본의 맞벌이 부부사이에서 자라난 꼬마들의 우울한 일상이나 외로움에 찌들어 버린 독신자들을 비추는 이런 장면은 일본에서 생산된 수 많은 작품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습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엄마와 아들 그리고 딸이 거실에 앉아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화목한 가정을 연출하고 있을 때, 사회에 이리저리 체이고 힘든 전투를 끝내고 자기 연민에 빠져 힘없이 걸어오던 그 집의 가장은 집안에서 울리는 높은 톤의 맑은 웃음 소리에 잃어 그 안에서 쪼그라 들었던 희망이 발기하며 얼굴에 없던 미소까지 꽃 피운채 문을 열고 힘차게 외친다.
"ただいま!"
그리고 저 밝은 목소리에 그늘을 모르는 그의 부양가족은, 희망에 취한 가장에게 경쾌한 목소리로 이구동성이되어 외친다.
"おかえいなさい~"
그리고, 카메라는 페이드 아웃이 되어 모든 불을 환하게 ?P혀둔 집을 비추고, 집안에서는 별 쓸데 없는 잡담이 오고가면서, 여전히 톤 높은 웃음 소리가 울려펴진다.
그리 일본에서 생산된 작품을 많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웬지 수백번은 봐온것 같은 저런 장면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각종 영상물에 너무도 자주 나오는 장면들이다.
단순히 일상의 모습으로 'ただいま'와 'おかえいなさい'라는 이 인사말은, 일본어 숙어집에는 꼭 나오는 아주 기초적인 문장들이고, 우리가 '다녀왔습니다',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하며 그 단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듯이 일본인들 역시 그저 시간 때우기식 캐치볼 처럼 의미 없이 주고 받는 단순한 문장일 뿐이다.
하지만 이 두 문장이 스토리에 녹아 들어 영상과 어우러 졌을때, 저 단어들은 심금을 울린다.
'에반겔리온'에서 자신이 '에바'에 타야하는 이유를 모른체 방황하던 '신지'가 돌아왔을때, 미사토에게 조금은 주눅든 목소리로 "ただいま"라고 이야기 했을때,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미사토의 "おかえいなさい!"라는 인사는, 1000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어떤 위로와 격려보다 큰 힘이된다.
그리고 이런 장치는 일본에서 생산된 각종 작품에서 수없이 반복된 장면들이고, 앞으로도 꾸준히 애용되는 장치일 것이다.
2. 'さようなら。'와 '안녕'
이런 중의적인 뜻을 표현하는 문장(혹은 단어?)중 가장 압권은 역시 'さようなら。'일것이다.
학교에서 하교길에 친구와 헤어지면서, 직장의 동료와 헤어지면서 빈번하게 나오는 단어가 바로 이 'さようなら。'이다.
그리고 이때 쓰여지는 'さようなら。'는 그 사람이 의도를 했건 의도를 하지 않았건, 내일의 만남에 대한 희망을 담고있다. 하지만, 이 단어가 또 가장 많이 쓰여지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서 이다. 그리고 이때는 그 의도는 너무도 명백하다. 바로 더이상의 만남에 대한 어떤 희망도 거부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픔이 영근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이 목소리는 감미롭게 심장을 후벼판다.
물론 한국에도 '안녕'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중의적으로 쓰이고 있다. 아니... 일본과 거의 쓰임세가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안녕'은 일본의 'さようなら。'보다 상당히 포괄적인 인삿말이다. 일본에서 쓰여지는 'さようなら。'는 헤어질때 쓰여지는 말이지만, 한국에서의 '안녕'은 만날때나 헤어질때 언제라도 가볍게 쓰여질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이 중의적인 뜻은, 이 인사가 언제 쓰여지냐에 따라 틀려진다.
만남의 반가움에 사용되어진 '안녕'은 '녕'이라는 글자가 가지고 있는 그 소리만큼이나 상쾌한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안녕'은 그런 의미에서 주로 만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사용이 된다.이 역시, 사용자의 불순한 의지가 들어있지 않다면, '안녕'이라는 인삿말은 일반적으로 불순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이 이별의 인삿말이 되었을때는 필연적으로 그 안에는 사용자의 의지가 들어 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더이상의 만남을 지속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혹은 그 가능성을 필사적으로 단절하는 날이 잘 선 칼날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계속이어질 만남의 단어가 단절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였을때, 그 상처는 더욱 깊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별에 쓰여진 '안녕'이라는 단어는 이별을 위한 1000가지의 이유보다 단호하고 날카롭다.
이런 강한 힘때문일까? 우리에게 인식되는 '안녕'은 만났을 때의 인삿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선사 이전부터 부정한것은 땅속 깊은곳에 숨겨야 하는 것이고, 부정한 것은 그것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 존제를 결고 입밖에 내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ps.
난 어렸 시절 '안녕'이라는 말이 순수한 한글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내가 무척 좋아했던 단어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녕'이라는 글자가 가지고 있는 발음의 묘함이 좋았고, 나중에는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중의적인 뜻이 좋았다.
그런데 어쩌다 펼쳐든 국어사전에서 '안녕'이라는 단어의 곁에는 괄호속에 꼭꼭 싸매여진 한자'安寧'을 보았을 때는, 뭔지 모를 커다란 배신감 마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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