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순간에는 그냥 머리속이 백지가 되는 영화들이 있다.
뭔가 그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면, 무척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뭔가를 쓸려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어 놓는 그 순간까지도 머리속이 백지가 되서, 아무런 말도 못하는 그런 영화들이 가끔씩 있다.
연애사진은 그런 영화였다.
내가 이 영화를 본건 꽤나 오래전이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하기도 전에 봤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이 영화에 관한 아무런 글도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만큼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난 이 영화에 관한 짧은 글을 남긴다.
히로스에 료코라는 인물이 나에게 왜 그런 이미지로 박혀 있는지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녀가 뭔가 신비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배역만을 해온것도 아니고, 내가 접한 그녀의 출연작들은 오히려 일상의 모습에 더 가까 웠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접한이 영화는 '료코에 료코에 의한 료코를 위한 영화'라는 느낌으로 다가 왔다. 히로스에 료코가 아니면 영화 속의 '시즈루'역은 아무도 소화해 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시즈루라는 역이 가지고 있는 보헤미안적인 이미지와 영화 전반에 흐르는 몽환적인 착각은 지금까지도 내 머리속에 강렬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 보헤미안적인 이미지는, 영화의 스토리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영화의 소재인 카메라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사진은 예술이다.
하나의 작품에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조소나 회화와는 다르게 아주 짧은 '찰라'를 담는 사진은,망각의 세례를 받은 인간에게,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해 주는 기술의 승리이자 예술인 것이다.
영화 속의 시즈루는 그 순간 순간을 아주 가볍고 경쾌하게 찍어 나간다. 이 모습은 예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짖눌려 한번의 셔터를 누르는 손에 만겁의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남자친구 '마코토'와는 무척 상대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일까? 시즈루가 찍는 카메라의 셔터음은 왈츠 처럼 경쾌하고 가볍게 파고들지만, 마코토가 셔터를 누를 때면, 'FM2'의 무게감과 그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셔터막의 기계적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음악 보다는 셔터음이 주는 리듬이 더 큰것 같다.
시즈루의 경쾌한 걸음 걸이에 따라, 경쾌하게 울리는 셔터음의 리듬을 타고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코토의 무겁고 느릿한 셔터음이 벽처럼 다가오니까 말이다.
또 하나,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건 이 영화의 앵글이다.
기존이 영화는 사람의 일상적인시선과 구도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영화 역시 그런 일상적인시선과 구도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종종 보이는 '뷰파인더'적인 앵글은 무척 유니크하다.
하나의 사과가 있다. 그 사과를 일상으 시선으로 볼때는 사과이지만, 뷰파인더를 통해서 보게 되면 그 사과는 그냥 사과가 아니고, 나에게 의미가 되어 다가온다. 그 의미가 깊건 얇건 간에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렇게 의미가 되서 다가온다.
덕분에, 이 영화는 히로스에 료코의 매력과, 카메라와 사진이 주는 그 특별함을 잘 살린 영화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다가갔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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