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역사의 진실은 하나고, 역사는 다르게 해석될 수 없다고 믿었다.
이미 명확하게 벌어진 상황에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것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억지를 부리거나 시치미를 떼며 무시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역사는 그 시각에 따라 하나의 사건에도 수만가지의 해석이 있을 수가 있고, 그 삶을 살아간 이들이 가지는 수 많은 에필로그들이 또 다른 역사를 만들고 있다. The Reader는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에 대한 또 하나의 에필로그이다.

개개인의 삶이 모여 시대의 역사가 된다. 그리고 그 개기인의 삶은 수 많은 에필로그가 되어 수 많은 역사의 해석을 만든다.
그래서 한나의 삶이 왜곡된 역사라고 주장 할 수는 없다. 분명히 한나와 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삶을 살아간 이들이, 시대의 흐름속에서 죄인으로 낙인 찍혀 버린 사실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그 억울한 삶이 책임자들이 '면죄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단지, 시대가 이끄는 순간의 삶을 산 것이다.
그 시대가 이끔에 따라간 삶이 패자의 편에 있었기 때문에 한나의 삶은 고달파 진것이다.
삶은 수 많은 영화의 모음이다. 세상 누군들 그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 봤을 때, 사연이 없겠는가?
이 영화는 한나와 마이클의 삶에 그렇게 카메라를 들이민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거기에 홀로코스트가 아닌 남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개인에 대한 미화이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가 한 '꼬마'의 죽음으로 전쟁의 면죄부를 요구하듯이, 이 영화 역시 한 여인의 죽음으로 그 홀로코스트의 주역들에 대한 면죄부를 요구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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