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때 '대한예수교장로회'였던 '수원 서부교회'에 다녔었다.

그곳에서 학생회 활동도 했으며 성가대 활동도 했다.

초등학교때는 매일매일 새벽기도를 다녔고, 친구를 전도하여 교회에 다니게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난 당시에 교회 선생님이었고, 지금은 목사님의 사모가 되신 한 선생님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아직도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는 나의 합리화 이다.

난 지금은 종교가 없다.

나를 아는 몇몇은 내 종교 편력에 관해서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을 연상한다.

그정도로 난 다양한 종교에 관심을 가졌고, 그곳에 적을 두고 있었다. 기독교도 그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사람의 아들'에서와 다른 점은, 난 어느것 하나 나의 의지로 종교를 선택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와 자유가 생겼을 때 난 '무교'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아니 난 신이 제발 있기를 바라는 쪽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다른 이들의 종교에 관해서 옳다 그르다를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일부 기독교 인들에 관해서 상당히 불쾌감을 가지고 있으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난 이들에 관해서 거침 없는 비판을 늘어 놓는다.

이것은 종교의 자유를 두둔하는 나로서는 딜레마에 빠지는 문제이다. 하지만 그 일부의 기독교인들의 파쇼에 가까운 종교의 강요는 그런 딜레마를 합리화 하기에 너무도 적당한 꺼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성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그것이 정말 100% 신의 말씀인가?라는 의문을 좀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그래'라고 고개를 끄떡여 줄 수는 있다.) 다만, 성경을 부정하지 않을 지라도 '교리'는 부정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지만, 교리는 인간이 만든것이다. 그건 아무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많은 교리가 그리스 신화에서 처럼 신탁을 통해 받아진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성경'은 같아도 '교리'는 틀리기 때문이다. 만일 '교리'가 신탁에 의해 만들어 졌다면, 그 각기 다른 교리들을 떠 받드는 사람들은 반대로 자기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교리는 '신탁'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딜레마이다.

특정 나라에서 '교리'는 기독교가 그 곳에 자리를 잡았을때 그 사회의 '사회성'을 보여 주고 있다.

한국에서의 대표적 교리인 '술 마시지 말라'는 성경에서 보여주는 예수의 첫번째 기적과 만나면서 딜레마에 빠진다. 예수의 첫번째 기적은 바로 잔치집에서 맹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회에서는 그것을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주'가 음료'수'이기 때문에 이 교리를 적용받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그건 옹졸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그럼 포도'주'가 된 그 '물'을 마셨으면 되는거 아닌가? 물이 없어서 포도주를 만든것이 아니라. '물'로 포도'주'를 만든것이란 말이다. 그리고이런 예외성 때문에 '교리'는 '사회성'을 갖는 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세상 어느곳인가에 자리잡은 한 기독교에는 '마약을 하지말라'라는 교리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비록 성경에는 안나와 있을 지라도 말이다.

교리는 그렇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안전 장치의 역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처럼 사회에 따라 다양한 교리는 결국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리는 그처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정작'신탁'(기독교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성령의 은혜'를 받아 쓰여진)인 성경을 무시하고 있다. '신약'의 제 1계명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지만... 그들은기독교인들의 영혼의 가족,즉 '교회'의 울타리 안에 있지 않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웃은 '전도'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그렇게 소음으로 피해를 주고, 일요일이면 온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난리를 치면서도 조금의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없는 것이다.

오늘 우연히 http://elyasion.com이라는 사이트에 들리게 되었다.

그러다 공지를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야 했다. 아무리 그들의 폭력성에 일정 정도 적응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접하면 심장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동성애에 대한 것이야 개인의 취향이고 자신이 그것을 싫어 한다는데 어쩌겠는가? 브리짓 바르도에게는 문화의 다양성을 요구하면서, 스스로는 그런거에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면,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뭐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하지만.. '기독교인만을 사랑합니다.'라니....

성경에서 '남창하지 말라'라고 하였으니, 그가 동성애에 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어디에 간 것인가?

'전도'란'사육'이라는 말과동의 어인가? 그래서 전도의 대상에게 줄 사랑 따위는 씨가 말라 버린것인가? '사육'의 대상에게 '영혼의 양식'은 줄 수 있어도 '사랑'은 줄 수 없다는 것인가?

하나의 예를 들었지만, 난 가끔 일부 기독교인들이 무서울 때가 있다.

그들의 종교에 대한 열의는 '파쇼'에 가깝게 다가 올때도 있기 때문이다.

자기들 안에서 모든것이 통일되야 하며, 자기들 만이 진리라는 그 오만함은....

제발... 예수의 말 처럼 그들의 이웃인 비 기독교인들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들의 사명인 '땅끝까지 전도'를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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