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씩 남에게 글을 쓴다.
가끔은 편지지 한두 장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짧지 않은 문장에서부터, 꽃을 보내거나 크리스마스 때에 보내는 카드 등에 쓰는 아주 짧은 문장까지... 그렇게 가끔씩 난, 남에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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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글의 말미에는 항상 하나의 단어를 넣어 둔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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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왜 그 짧은 단어에 그렇게 집착을 보이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 그런 집착을 보였는지도 궁금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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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두 가지 모두 이유와 시기가 생각나지 않는다. 답 없는 질문이 공허히 나에게 다시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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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난 조금은 집착적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왔다. 적어도 남에게 보내는 글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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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오늘 내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믿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에 행복 따위가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난 행복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지만, 오늘도 난 지인에게 메일을 쓰면서 행복해라라는 짧은 인사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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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보내고 나서 난 조금은 우스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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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알라의 축복을 비는 모습 같았다고 할까? 자신이 믿지 않는 신의 축복을 비는 성직자라... 참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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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행복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고 스스로 믿음에도 난 왜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일까? 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왜 세상에는 행복 따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역시나 답 없는 질문이 다시 나에게 되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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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이야기 하면서 계속 성직자를 비유해서 조금은 민망하지만, 사람들... 아니 적어도 나는 행복은 종교와 같다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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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 실체를 본적도 없고, 그 증거를 본적도 없다. 단지 믿을 뿐이다. 믿기에, 이것이 신의 기적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다가, ‘그래! 이것은 신의 기적이야!’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처럼, ‘이것이 행복이 아닐까?’라고 의문을 가지다가, ‘그래! 이것이 행복이야!’라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순수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무한한 축복.... 그것이 행복이라서 난 행복은 종교와 같다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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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때문에 믿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행복을 기원하는 나의 모습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성직자가 그 신의 힘을 빌어 축복하고 있는 모습처럼 아주 어정쩡하고 가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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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였던가? 신은 있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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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는 행복 역시도 같은 이유로 있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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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지 믿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행복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록 불행할지라도, 순간순간 행복을 꿈꾸면서 그나마 살아갈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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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 수험생이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하는 것이라는 믿음과, 오늘의 불행은 내일의 행복을 위한 에피타이저라고 믿는 어느 이태백의 살아갈 희망이 되기 위해서라도 행복은 존재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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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약하디 약한 인간이 기댈 수 있는 가장 작은 기원이 되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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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당시도 부디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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