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청산법에 반감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전 한국인입니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유치하지만 자신을 합리화 하자면, 전 한국인 중에서 상당히 일본 쪽에 기울어 있는 사람입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보다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한국의 드라마 보다는 일본의 드라마를 더 많이 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기자는 유스케 산타마리아씨 입니다. 이분은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처음 봤지만, 아르제논에게 꽃다발을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에 홀딱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일본드라마만 대충 추려도 50개가 넘고, 영화나 애니메이션등을 합치면 그 수를 다 헤아리기는 힘듭니다. 또 일본 만화를 좋아해서 인터넷 아다치 미츠루 동호회에서 활동 중이고, 몇몇 일본 드라마에 자막을 만들기 위해서 팀으로 작업을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 이 정도를 나열한다고 해서 이후 제가하는 이야기의 객관성을 보장해 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개관적인 입장에서, 하지만 저 역시도 한국인이기에 주관이 많이 들어간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이 글을 씀이 반일을 이야기 하기 위함이 아닌 오해를 풀기 위함임을....

얼마 전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가 8강에 올라가고, 4강에 탈락을 했을 때의 Yahoo를 통해서 당신들의 반응을 봤습니다.

열렬히 한국을 응원해 주신 분도 있었고, 한국을 욕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패배를 안타까워해주시는 분도 있었고, 당연한 결과라며 조금은 고소해 하시는 분도 있더군요.

이때, 부정적인 반응 중에 제 뇌리에 강하게 박힌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친일파를 없애려 하는 법률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제가 일본에 살지 않고, 또 그쪽에 친구가 없기 때문에 그쪽에서 '친일청산법'에 관한 뉴스가 전해졌다는 것을 막연하게만 알 수는 있었지만, 그 내용이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렇게 말씀하셨던 분들은 그래도, 그만큼 한국의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시는 분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마음을 열고 가까이 다가 서려는데, 그런 법률이 만들어 졌다는 것에 분노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여기서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에게 한국인을 대신해서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우선은 지겹겠지만, 지난 과거사를 이야기 해야겠네요.

이 글을 읽은 분은 '뭐야 또 과거사 이야기야?~'라고 하시면서 싫다 하며 짜증을 내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읽어주세요. 어쩌면 당신이 알고 있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한국은 일본에게 점령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반백년에 가까운 시간이었지요. 같은 나라의 사람이 그 기간 동안 독재를 해도 무수한 사건이 생기는데, 하물며 타민족의 지배를 받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이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그 시절에 사셨던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정말 말 못할 무수한 고생을 하셨을 것이고, 그런 이야기들을 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민족의 고통에 결연하게 일어서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가며 많은 분들이 한국을 지배했던 일본에게 저항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분들을'독립운동가'라고 부릅니다.

그 분들은 추운 만주를 비롯한 먼 타국에서, 또는 한국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셨습니다.

하지만 그 고생은 그분들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많은 불이익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괴롭히고 핍박한 이들 중에는 같은 민족이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나 나타나는 기생충 같은 기회주의 자들 말입니다.

이들은 당시 일본의 편에 서서 같은 민족을 핍박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는 감시자 역의 유태인이 오히려 독일군보다 더 지독하게 유태인을 다뤘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의 편에선 그들은 자신들의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상당히 가혹하게 한국인들을 다뤘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친일성산법의 대상이 바로 이들입니다. 2004년 현재 일본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일본의 통치아래에 있던 시절 같은 민족의 피를 빤 이들을 가리켜 '친일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당신들은 물을 것입니다. 이미 50년이나 지난 일을 왜 이제 와서 이야기하냐고, ... 그 말에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부끄러운 과거가 바로 그 50년 사이에 있었습니다.

50년 전 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패전으로 끝이 났습니다.

한국으로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덕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독립을 이룰 수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한국은 단지 일본이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이룬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힘없는 나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은 또 다른 열강들의 의지에 의해 나라가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반도를 38선으로 양분한 후에 38선 이북은 소련이 정비를 하고, 이남은 미국이 정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소련의 세력하에 있던 38선 이남, 지금의 북한은 친일파에 대한 철저한 숙청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그런 작업이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이때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우선 미국은 한반도 남쪽에 들어서서 자신들의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친일파들을 이용합니다.

이들이 친일파들을 선호했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들과의 소통이 가능했던 사람들이 친일파였던 것이지요.

반백년의 시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일본에 대항했던 많은 유지들은 몰락해갔습니다. 하지만 일본 쪽에 붙었던 이들은 여러 가지 비리와 일본당국의 지원으로 부유해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부로 자식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결국 고등교육을 받았던 다수가 친일파의 자녀이거나 친일파 자신이었고, 미국은 영어를 아는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친일파들을 숙청하기 보다는 자신들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면죄부를 줍니다. 또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서 일본의 통치하에서 치안을 담당했던 이들을 그대로 고용을 합니다. 독립 후 전전긍긍하던 친일파들은 가슴과 어깨를 펴고 다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미국은 소련과 몇 번의 회담 후에 신탁통치를 제안합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도 이부분을 소련이 신탁통치를 제안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데, 신탁통치를 제안했던 것은 미국측이었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단일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신탁통치를 반대합니다. 범국민적인 반탁 운동으로 궁지에 몰린 미국은 한국측에 신탁통치를 제안한 것은 소련이라고 거짓정보를 흘립니다. 이에 소련이 반발하며, 신탁통치를 제안한 것은 미국이었다고 주장을 하며 회의기록을 증거로 공개를 하고 이 내용이 언론을 타면서 진실은 ?P혀집니다.

아무튼, 당시에는 찬탁과 반탁으로 의견이 나눠져 있었습니다. 이후 초대대통령이 되는 이승만은 찬탁 쪽이었고,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반탁 쪽에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각종테러와 암살 및 여론조작으로 반탁 쪽의 인사들을 숙청해 갑니다. 이때 이승만이 이용했던 것이 냉전적 가치관이었습니다. (사회주의자를 뜻하는 빨갱이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정치인들을 궁지에 몰아 넣는 극악한 단어로 이용되고 있을 정도니, 당시의 이승만이 냉전을 이용한 정치적 공작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반탁을 주장하는 인사들을 제거한 이승만과 미국은 결국 38선 이남만의 단독정부가 수립합니다.

단독정부가 만들어지고,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 분명 일본통치하의 잔재들을 청산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지지만, 이승만에게는 과거보다 앞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은 반탁을 주장하던 자신의 경쟁자들을 물리친 방법이었던 '냉전'의 이분법을 다시 이용합니다. 그래서 친일파들에 대한 청산보다는, 눈앞의 빨갱이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그 일에 앞장 선 것이 바로 친일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활약으로 이승만은 장기집권을 하게 됩니다. 덕분에 한국에게 찾아왔던 2번째 역사청산의 기회는 정쟁만을 일삼던 대한민국의 혼란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미루어 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청산의 문제가 나올 즈음에 6.25전쟁이 터지고 맙니다.

한국은 이때부터 극명한 냉전의 이데올로기에 휩싸입니다. 빨갱이라는 붉은 쇠사슬은 멀쩡한 사람도 죄인으로 만드는 무서운 무기가 되었고, 6.25라는 전쟁을 격은 이들은 먼 옛날의 일보다는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났던 일에 더 분노하여 많은 이들이 빨갱이를 단죄하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은 3번째 청산의 기회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친일파들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됩니다. 6.25가 패전으로 허덕이던 일본에 전쟁특수를 가져다 줬고, 이때 일본인과 다양한 관계를 가졌던 친일파들은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며 또 다른 혜택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은 부로 상류사회를 장악해 버린 한국에서는 더 이상 친일청산이라는 말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장관이 친일파이고, 신문사 사장이 친일파이며, 국회의원이 친일파이고, 기업이 사장이 친일파이고 대통령이 친일파인데 그런 말이 어떻게 나왔겠습니까?.

2004년 현재에도 이때의 모습들은 다양하게 남아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돈이 없어서 시골변두리에서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 가고 있을 때, 일제시대와 건국초기에 고위직에 머물면서 그 부를 이어갔던 많은 친일파들이나 그의 후손들이 사회 곳곳에서 고위직을 유지하면서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더 통탄할 것은, 그 당시에 아무런 청산이 없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던 일본순사의 아들은 2004년 한국에서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으며, 자신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뻔뻔하게 말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독립운동가들이 후손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바빠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의 고혈을 빨아 먹은 이들이 이제 그들의 유일한 자부심 마저 가로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이 제정하고자 하는 '친일청산법'은 바로 이런 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법치국가입니다. 그래서 이미 공소시효가 말소되었을 그들에게 단죄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연좌제로 그들을 옳아 매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공이 없는 사람이 공을 가로채가는 것을 막고, 공이 있음에도 그 공을 평가 받지 못하는 이들을 제대로 평가를 해주자는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일본인 여러분, 그 뿌리깊은 감정을 단숨에 바꿔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일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많은 한국인을 이해해주시기만을 바랍니다. 당신들에게는 단지 지겨움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조언을 하나 드립니다.

이것은 일본인들에게 드리는 말이면서도, 한국인에게 하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익명성을 이용해서 평상시에는 하지도 않을 말들을 너무도 쉽게 합니다.

부디 말의 무게를 느껴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좋아한다고 말할 때 보다는 비판을 해야 할 때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좋아할 때는 단지 좋다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비판을 해야 할 때는 그 근거가 확실해야 하고, 다른 이들과의 논쟁이 되었을 때 자신의 의견을 좀더 논리적으로 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가 없는 의견은 ''를 쓰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한국을 싫어하신다고 말하시기 전에 먼저 한국을 공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다른 한국인에 비하면 일본쪽에 많이 기울어져 있지만,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 등에 나타나는 전쟁에 대한 사고관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한국인입니다. 하지만 아직 일본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저는 아직은 좋은 점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관해서 여러 가지를 알아가면서 그 좋은 면들이 보이게 된 것이고요.

다시 한번 부탁 드립니다. 욕을 하시기 전에 먼저 한국을 알기 위해서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아나요? 저처럼 그렇게 싫어하던 것의 좋은 일면을 찾을 수 있을지....

지금 일본에는 한국의 문화에 대한 다양한 바람이 분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도 오래 전부터 매니아들을 통해서 일본의 문하가 전해져 들어왔습니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은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와 있었던 것이고, 다양한 드라마와 음악등이 문화개방이전부터 인터넷을 통해서 많이 퍼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화에 열광하는 열혈 매니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서로가 서로의 문화를 접하다 보면, 언젠가 이 골 깊은 감정 사이에도 포근한 눈이 내려 매워지는 날이 있겠지요.

그럼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인 여러분, 이만 이 지겨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저의 이 못난 글로 인해서 한국에 대한 나쁜 감정이 사라지기 까지는 바라지 않겠습니다만, 작은 오해나마 풀렸다면 저로서는 이 글을 쓴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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