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는 3학년 2학기 때 실습을 나간다.

대학을 갈려는 아이들은 남아서 공부를 하기도 하지만, 나야 딱히 공부에 뜻이 없었기 때문에, 냉큼 나가 버렸다.
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있는 사업장에 지원을 했는데, 다행히 쉽게 붙었다.
상사들도 좋았다. 반장님은 기름밥 곤조를 부리지도 않으셨고, 사수도 날 잘 챙겨주었다.
난 그분들이 고마웠고, 그래서 반장님이나 사수가 숙직이나 당직을 설 때는 내가 대신 서기도 했다. 그럼 주임님이 맛난 거 먹으라고 식권이라도 하나씩 더 챙겨 주셨다.


난 편하게 일하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나름 좋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었다. 당시 나처럼 실습을 나간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난 정말 운이 좋은 경우였다.


단 하나... 월급이 다른 곳에 비해서 좀 짠 편이었다.
첫 달 월급이 25만 원 이었으니...
뭐, 나중에 실습이 끝나고 직원이 되면서 좀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짠 편이었다.


어느 날 주임이 날 따로 부르더니 지금 급여 수준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난 지금 내 주변 친구들이 얼마 정도 받고 있으며, 우리는 좀 적게 받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음 달, 월급이 50% 정도 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박봉을 보다 못한 사수가 주임에게 이야기를 했던 거다.
근데, 그 이야기를 하며 사수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내 월급을 50%나 올려준 사수에게 내가 고마워해야 했는데, 사수가 고맙다니...


내용은 이렇다.
당시 나랑 같이 입사했던 동기가 3명 더 있었다.
당시 우리는 똑같은 월급을 받았고, 사수가 보기에는 업계 수준에 비해서 월급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숙직을 서는 날 보며, 월급이 적어서 그런가 싶어서 마음이 짠했단다.(난 그냥 시간이 남아서 한 것뿐인데;)
그래서 임금을 담당하는 주임에게 이야기를 했던 거다.


주임은 날 만나기 전에 이미 동기 3명을 모두 만나서 이야기를 했단다.
근데 그 3명이 모두 별문제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단다.
사수는 그걸 보며 좀 당황했다나? 당사자들은 아무런 불만도 없는데 자기가 쓸데없이 나선건 아닐까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내가 그 문제에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서, 자기가 병신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단다.
그게 고마웠단다.


난 사수가 고마웠고, 사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주임도 고마웠다. 그리고 주임의 건의에 흔쾌히 월급을 인상해준 사장에게도 감사했다.
요즘도 이런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의 처지에 연민을 가지는 거나, 그걸 상사에게 건의하는 거나, 그리고 그런 건의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일일이 찾아가서 그 의견을 물어보는 거나, 또 그 답변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확실히 당시의 난 운이 좋았고,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했다.


다만... 동기들은 좀... 빙신같다고 생각했다.
월급 문제는 동기들과 많이 했던 이야기다. 당연하게도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했고, 불만을 토로하기도했다.
근데, 기회가 왔을 때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총대를 매고 나선 사수를 병신으로 만들뻔했다.


요즘 뉴스를 보면 그 사수가 종종 떠오른다.
총대를 매고 뭔가 문제를 지적하면, 사람들은 침묵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 문제점을 이야기하면 되는데, 오히려 총대 맨 사람에게 분란을 조장한다며 손가락질한다.


그럼 안되는 거다.
그는 우리가 받는 부당한 대우를 개선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건데, 용기가 없어서 먼저 나서지 못하더라도, 앞에서 깃발 든 사람을 비난해선 안되는 거다.
날 위해 목소리를 낸 사수를 빙신으로 만들면 안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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